비엔나와 음악/악성 베토벤

테플릿츠(Teplitz)의 베토벤

정준극 2008. 4. 29. 16:56
테플릿츠(Teplitz)의 베토벤


베토벤은 1811년 8월 테플릿츠 마을을 방문하였다. 테플릿츠는 오늘날 체코 공화국에 속한 작은 마을로서 예로부터 도자기가 유명한 곳이다. 간혹 그는 클라리(Clary) 궁전에서 옛 친구들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 41세이던 베토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려움이 많았었다. 베토벤은 불평을 잘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상습적이었다. 대부분 대화의 내용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베토벤은 자기의 불평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거나 들어주지 않으면 낙심하여 더욱 불평하는 마음을 가졌다. 베토벤은 이듬해인 1812년 7월에도 테플릿츠를 방문하였다. 이 때에 베토벤은 자기보다 21세 위인 괴테와 며칠 동안 함께 지낼수 있었다. 이 즈음에 괴테의 파우스트 제1부가 출판되었다. 베토벤과 괴테는 파우스트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며 서로 우의를 다졌다. 어느때 누가 베토벤에게 괴테의 파우스트를 주제로  작곡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베토벤은 ‘그런 위대한 작품을 감히 어떻게 음악으로 대체하겠느냐?’면서 사양하였다고 한다. 만일 베토벤이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만들었으면 어떠했을까?

 

오늘날 체코공화국의 테플리츠 중심가 


베토벤과 괴테가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몇 명의 귀족들이 시종들을 거느리고 지나갔다. 괴테는 길옆으로 비껴서며 모자를 벗고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그들 가운데를 뒷짐을 진채 거리낌없이 지나치며 아무런 예의도 표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 괴테가 베토벤에게 ‘아니, 어찌하여 귀족들에게 예의를 표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베토벤은 퉁명스러운 말씨로 ‘그까짓 귀족들! 수도 없이 많지요. 하지만 진짜 귀족은 우리 두 사람뿐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베토벤은 괴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참을성 많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는 참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사람은 한번 죽는 것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하면 그를 위해서 열번이라도 죽을수 있다.'(How patient the great man was with me!...How happy he made me then! I would have gone to death, yes, ten times to death for Goethe,’)라고 말했다.

 

테플릿츠에서 괴테와 베토벤의 유명한 일화를 표현한 그림. 괴테는 귀족들에게 모자를 벗어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지만 베토벤은 뒷짐을 지고 거들떠보지도 않은채 걸었다. 그것이 베토벤이었다.

 

1812년 괴테는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에 대하여 ‘정말 놀라운 재능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사람 정말 못 말리는 성격이야! 아주 야성적이지! 그렇지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야! 그 사람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긴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 베토벤의 마음에는 천재성이라는 밝은 빛이 넘쳐 있어! 그 사람은 천재성의 빛을 인간들에게 비추고 있지! 그에 비하면 우리는 그저 어둠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일 뿐이야! 우리는 아침을 밝히는 빛이 어느 방향에서 나타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야!’라고 썼다.

 

베토벤이 머물렀던 테플릿츠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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