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악성 베토벤

바덴(Baden)의 베토벤

정준극 2008. 4. 29. 16:57
바덴(Baden)의 베토벤


바덴은 비엔나에서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우리는 보통 바덴이라고 부르지만 풀 네임은 '바덴 바이 빈'(Baden-bei-Wien)이다. 비엔나 인근의 바덴이라는 뜻이다. 바덴은 명칭에서 볼수 있듯이 온천장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휴양과 요양을 위해 바덴을 찾아오고 있다. 온천장에서 휴양도하고 치료도 받는 곳을 쿠어살롱(Kursalon) 또는 쿠어펜지온(Kurpension)이라고 부른다. 바덴에도 쿠어살롱이나 쿠어펜지온이 여러 군데나 있다. 베토벤은 바덴을 무척 좋아하였다. 그는 1807년부터 1825년까지 거의 매년 여름 바덴을 찾아와 지냈다. 아마 열번 이상이나 찾아와서 휴식을 취하곤 했을 것이다. 베토벤의 바덴 방문은 훗날 브람스가 잘츠부르크 부근의 바드 이슐을 거의 해마다 여름이면 마치 철새처럼 찾아 갔던 경우와 흡사하다. 베토벤이 바덴에 머물렀던 집들은 아직도 거의 모두 완벽하게 남아 있다. 그중에서 라트하우스가쎄(Rathausgasse) 10번지의 집만이 기념관으로 되어있다. 베토벤이 바덴에서 머물렀던 집들은 순전히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주소를 보고 파악했다. 하지만 간혹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한 베토벤이었기 때문에 주소도 정확하게 썼다고 생각지 않으므로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음) 과연 그 집에서 살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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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 라트하우스플라츠의 베토벤 기념관. 베토벤하우스라고 적혀 있으며 아랫층에는 기념품 상점이 있다.


베토벤이 바덴을 처음 방문한 것은 1807년 여름이었다. 요한네스바드(Johannesbad)에 머물렀다. 요한네스바드는 현재 바덴의 요양 온천 및 여관(Kurpension)중 하나로 주소는 요한네스바드가쎄(Johannesbadgasse) 12번지이다. 1808, 1809, 1813년에는 당시 자우어호프(Sauerhof)라고 불리던 봐일부르크슈트라쎄(Weilburgstrasse) 13번지에서 지냈다. 이 집은 아직도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호텔이다. 1920년 조켈(Sockel)이라는 조각가가 베토벤의 흉상을 만들어 이 여관 앞에 설치했다. 바덴에 있는 유일한 베토벤 기념상이다. 베토벤은 1821-25년 사이에 신경쇠약등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 특별히 바덴의 온천을 찾아 왔다. 1822년 베토벤은 춤 골데넨 슈봔(Zum Goldenen Schwan: 황금 백조)이라는 여관에 머물렀었다. 현재 안톤스가쎄(Antonsgasse) 4번지이다. 베토벤 당시에는 황금 백조 여관의 주소가 비너슈트라쎄 230번지였다. 현재 이 집에는 베토벤이 머물렀었다는 명판이 붙어 있다. 1816년에는 브라이트너슈트라쎄(Breitnerstrasse) 26번지에서 지냈다. 나중에 슐로쓰 브라이텐(Schloss Breiten)이라고 불리게 된 저택이다. 같은 해에 그는 현재의 공공도서관 옆에 있는 카이저 프란츠 링(Kaiser Franz Ring)9번지에 살았었다. 베토벤은 또한 현재 프라우엔가쎄(Frauengasse) 10번지로서 당시에는 마그달레넨호프(Magdalenenhof) 87번지에도 잠시 기거했었다.

 

바덴의 베토벤템펠(Beethoventempel).  

 

라트하우스가쎄(Rathausgasse) 10번지는 현재 작은 기념관이다. 당시 베토벤이 사용하던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이 집에 붙어 있는 명판에는 베토벤이 교향곡 제9번을 작곡하던 기간중에 이 집 2층에서 지냈다고 적혀 있다. 자연을 무척 사랑한 베토벤은 바덴에 있으면서 근처의 계곡인 헬레넨탈(Helenenthal)을 산책하기를 즐겨했다. 어떤 사람이 베토벤이 산책하는 모습을 적어 놓은 것이 있다. ‘베토벤은 산책하면서 갑지가 악상이 떠오르면 마치 지휘하듯 손을 크게 휘저으면서 멜로디를 소리높이 외쳤다. 그래서 간혹 주변의 말들이 놀라서 앞발을 높이 들었으며 지나가던 사람들은 '웬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라면서 부딪치지 않기 위해 다른 길로 바삐 사라지곤 했다. 베토벤이 바덴에 있으면서 산책을 자주 다니던 곳은 쿠어파르크(Kurpark)였다. 그것을 기념하여서 1927 베토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서 사람들이 쿠어파르크의 언덕 위에 마치 신전과 같은 건물을 짓고 그것을 베토벤템펠(Beethoventempel)이라고 불렀다. 베토벤템펠에 올라가면 바덴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베토벤이 자연을 사랑한 것은 그의 교향곡 제6번 ‘전원’에서 잘 나타나 있다.

 

베토벤템펠에서 내려다본 바덴 시가지

                                    

헬레넨탈은 1820년대 중반에 베토벤의 조카인 카를(Carl)이 자살을 시도했던 곳이다. 카를은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자신을 피스톨로 쏘았지만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베토벤은 카를의 보호자 겸 후견인이었다. 그러나 카를이 베토벤을 힘들게 하자 베토벤은 후견인 취소 소송을 냈다. 이 소송으로 베토벤은 귀중한 시간들을 빼앗겼다. 그래서 최소한 몇 편의 소나타, 현악 4중주곡, 그리고 교향곡 제10번을 완성하지 못했다. 당시 베토벤은 교향곡 제10번에 대한 스케치를 해 놓았었다고 한다.

 

바덴의 라트하우스 가쎄 10번지의 베토벤하우스에 설치되어 있는 기념명판. In diesem Hause wohnte Ludwing van Beethoven in den Sommermonaten der Jahre 1821, 1822, 1823 이라고 적혀 있으며 교향곡 제9번의 상당부분을 이곳에서 작곡했다고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