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1구 미노리텐키르헤(Minoritenkirche)

정준극 2008. 5. 14. 00:06

1구 미노리텐키르헤(Minoritenkirche) - 프란시스코 성회 소형제단 교회 

 

미노리텐키르헤

 

찾아가는 길: 주소는 미노리텐플라츠(Minoritenplatz) 2a. U3 헤렌가쎄에서 내려 미노리텐플라츠 출구로 나가면 바로 나온다.

개방시간: 매일 8시부터 19시까지. 겨울철에는 18시까지.

미사안내: 주일과 축일에는 8.30(독일어), 11시(이탈리아어) 미사가 있다. 고해성사는 토요일 17-18시에 가능하다.

참고사항: 미노리텐키르헤의 정식 명칭은 이탈리아어로 Italienische Nationalkirche Maria Schnee이다. 번역하면 ‘백설의 마리아 이탈리아 국립교회’이다. 이 교회의 부지는 일찍이 1224년 바벤버거 왕실이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코를 추종하는 수도승들을 위해 기증한 것이다. 처음에는 수도승들이 거처하며 기도하는 장소의 건물이었으나 만인이 기도하는 예배처로 만들자는 의견이 있어서 1276년 오토카르2세(Ottokar II)에 의해 정초되었다. 나중에 알베르트2세가 교회 건축을 크게 후원하였다. 건물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고틱양식으로 지어졌다. 고틱양식의 루드비히스코르(Ludwigschor: 루드비히 기념 찬양대석)는 1316-1328에 완성한 것으로 14-15세기에는 영묘(靈廟)로 사용되었다.


중앙제단


미노리텐키르헤는 1350년 최종 완성되었다. 원래 첨탑이었던 타워는 제1차 터키의 비엔나 공성 때에 크게 파손되어 곧 재건했으나 다시 제2차 공성 때에 크게 파손되어 아예 편평한 지붕으로 만들었다. 요셉2세 황제가 미노리텐키르헤를 비엔나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인들을 위해 선물로 주었다. 이탈리아인들은 교회 이름은 ‘백설의 마리아’(Maria Schnee)라고 바꾸었다. Maria Schnee는 미노리텐키르헤 옆에 있던 작은 채플이었으나 미노리텐키르헤를 건축하기 위해 허물게 되어 기념으로 Maria Schnee라는 명칭을 간직키로 한 것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색색의 대리석 가루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마이크로 모자이크라고 불렀다.


수호성인은 마리아 슈니(Maria Schnee)로서 축일은 8월 5일이며 또한 성 프란시스코도 수호성인으로 축일은 10월 4일이다. 미노리텐키르헤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L'ultima cena(Das letzte Abendmal: 최후의 만찬) 실물대 모작(模作)이 있다. 1809년 피렌체에 갔던 나폴레옹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그림 전체를 떼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프레스코여서 불가능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인 자코모 라파엘리(Giacomo Raffaelli)에게 의뢰하여 색색의 대리석 가루를 사용하여 모자익으로 똑 같은 작품을 만들도록 했다. 그것이 현재 미노리텐키르헤의 북쪽 벽에 설치되어 있는 ‘최후의 만찬’이다. 피렌체의 원화는 프레스코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퇴색하였으나 미노리텐키르헤의 ‘최후의 만찬’은 아직도 색상들이 선명하다. 프란시스2세는 이 역사적인 작품을 벨베데레궁전에 전시코자 했다. 그러나 벨베데레에 전시하기에는 그림이 너무 커서그대로 두었다. 미노리텐키르헤에는 유명한 시인이며 극작가인 피에트로 메타스타시오(Pietro Metastasio)의 임종 장면을 그린 그림도 걸려 있다. 메타스타시오의 임종에는 교황 비오4세(Pius IV), 살리에리, 모차르트, 하이든이 함께 하고 있다. 또 하나 유명한 그림은 히틀러가 미술가 지망생 때인 1910년에 이곳에 와서 미노리텐키르헤를 그린 수채화이다. 히틀러의 수채화는 한동안 미노리텐키르헤의 내부 벽면에 붙어 있었으나 아무래도 히틀러의 그림을 모셔 놓는 것은 말도 안되므로 슬며시 치웠다. 지금은 교회 사무실에서 보관중이라고 한다.

 

메타스타시오 기념상 하단 좌대의 부조. 모차르트, 하이든의 모습을 볼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미노리텐키르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