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22구 아슈페른 성마르틴교회

정준극 2008. 6. 4. 21:17

22구 키르헤 산크트 마르틴 추 아슈페른(Kirche St Martin zu Aspern)

아슈페른 성마르틴교회

 

아슈페른의 성마르틴교회와 사자

아슈페른교회의 중앙제단


22구의 아슈페른에 일찍이 14세기 초부터 교회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이 오늘날 아슈페른 성마르틴교회의 전신이다. 현재 성마르틴교회는 로바우가쎄(Lobaugasse)에 평화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주소는 아슈페르터 헬덴플라츠(Asperner Heldenpl.) 9 번지이다. 이 교회도 과거 여러번 수난을 겪었다. 1529년의 터키 공성 때에는 터키군에 의해 크게 파손되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아슈페른에 있는 거의 모든 집들이 터키의 포격으로 불탔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기록들도 모두 불길과 함께 사라졌다. 결국 성마르틴교회에 대한 과거의 역사가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교회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아슈페른에 개신교가 밀려 들어왔다. 가톨릭 교회인 성마르틴교회는 더욱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다가 가톨릭 부흥(Rekathholisierung) 시기를 맞아 교회는 일견 부흥되는 듯 했으나 1670년 도나우강의 홍수로 종탑이 씻겨 내려가는 등 다시 한번 수난을 겪었다. 새로운 교회가 건축되었다. 이번에는 강에서 떨어진 안전지대에 건축되었다. 그리고 종전과 마찬가지로 성마르틴에게 봉헌하였다.

 

애통해 하는 사자

 



그후 거의 1세기 동안 아슈페른은 태평가를 불렀다. 농사는 해마다 풍작이었고 산업도 발전하였다. 이러한 풍요로움은 1809년 5월 21일 끝났다. 나폴레옹의 군대와 이에 맞서는 오스트리아 카를(샤를르) 대공의 군대가 아슈페른과 인근 에슬링에서 대접전을 벌인 날이었다. 카를 대공의 기념상은 호프부르크 앞의 영웅광장에 우뚝 서 있다. 역사에 길이 남는 아슈페른 전투는 온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다. 성마르틴교회도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듬해인 1810년부터 교회재건에 들어갔다. 주민들이 증가했기 때문에 교회를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각계각층으로부터 교회건축을 위한 헌금이 답지했다. 그리하여 종전보다는 큰 교회가 새롭게 마련되었다. 교회는 최근인 1998년에 다시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내부는 옛 파트와 새로 증축한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옛 파트는 후기 바로크 스타일로 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중앙제단의 대형 성화는 루드비히 마이어(Ludwig Mayer)의 작품으로 성마르틴이 자기의 외투를 반으로 쪼개어 불쌍한 사람에게 걸쳐주는 장면이다. 이오니아식 기둥이 장식되어 있는 형상은 성플로리안(hl. Florian)과 성레오폴드(hl. Leopold)이다. 태버나클에 있는 마리아 그림은 15세기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원본을 복사한 것이다. 왼편 부제단의 성화는 예수 탄생을 그린 것이며 오르편 성화는 예수 부활을 그린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안톤 쉴헤르(Anton Schilcher)의 작품이다. 교회 앞마당의 사자상은 아슈페른 전투에서 희생된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 조각 작품이다. 사자는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을 카를 대공이 아슈페른에서 처음으로 격퇴한 용맹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자는 오스트리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추모하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슈페른 전투에서 산화한 병사들을 추모하는 사자상

아슈페른 사자의 하단. 1858년이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