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비엔나의 교회들

23구 지벤히르텐 성마르틴교회

정준극 2008. 6. 4. 21:19

23구 키르헤 산크트 마르틴 추 지벤히르텐(Kirche St Martin zu Siebenhirten)

지벤히르텐 성마르틴교회 - 지벤히르텐 교구교회

 

지벤히르텐 교구교회

 

지벤히르텐(일곱 목동)에 1447년 처음으로 예배처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544년의 마을 기록에 의하면 또 다른 교회도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같은 교회인지 또는 다른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교회는 1683년 터키의 비엔나 공성 때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후 지벤히르텐에는 임시예배처만 있었다. 터키의 공격이 있은지 1백년 후인 1783년 지벤히르텐 마을에 주민들이 증가하자 새로운 교회와 함께 새로운 교구의 설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주민들이 헌금하여 드디어 새로운 교회를 완성하고 성마르틴에게 봉헌하였다. 당대에 방앗간 건축의 거장인 프리드리히 킨닝거(Friedrich Kieninger)가 건축을 맡았다. 후기바로크 양식의 교회는 현관의 오른편에 높은 종탑을 가진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건축비가 넉넉지 못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지 못했다. 교회 옆에는 지벤히르텐 공동묘지가 있다. 

 

지벤히르텐 교구교회 제단

 

1944년 8월 23일은 지벤히르텐으로서 기억해야만 하는 날이었다. 연합군 폭격기들이 지벤히르텐의 발전소인 다누비아(Danubia)를 폭격키로 되어 있었으나 항법사들의 실수로 지벤히르텐 주택지역에 폭탄을 퍼부었다. 약 3백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마을 전체가 파괴되었다. 성마르틴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완전히 파괴되었다. 교회 옆의 공동묘지는 마치 지뢰가 터진 지뢰밭과 같았다. 안장되어 있던 유해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마을사무소가 화염에 싸여 모든 기록들이 연기속에 사라졌다. 전쟁이 끝난후 주민들은 성마르틴교회가 있던 장소에 우선 급한 대로 바라크 교회를 세웠다. 새로운 교회건축은 1954년부터 시작되었다. 교회는 이듬해 성마르틴에게 다시 봉헌되었다.  교회내부 역시 특별하지 않다. 중앙제단의 대형 그림은 주교였던 성마르틴의 모습이다. 일반제단에 보관 되어있는 성물은 성발레리아(hl. Valeria)와 성콘코르디우스(hl. Concordius)의 유품이다. 교회 입구 오른편 벽에는 선한 목자를 상징하는 석상이 설치되어 있다.

 

 선한 목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