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터키/터키의 비엔나 공성

두번에 걸친 비엔나 공성

정준극 2008. 6. 8. 07:00

두번에 걸친 비엔나 공성(攻城)

 

16세기 초와 17세기 초에 오토만 터키는 비엔나를 공격하여 함락코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퇴각한 일이 있다. 제1차 비엔나 공성은 1529년에 있었으며 제2차 비엔나 공성은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후인 1683년에 있었다. 제1차 비엔나 공성은 The Siege of Vienna(비엔나 공성)라고 부르며 제2차 비엔나 공성은 The Battle of Vienna(비엔나 전투)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왜냐하면 1529년에는 비엔나가 성곽 안에 들어 앉아 비엔나를 지키기에 죽을 힘을 썼었지만 1863년의 경우에는 독일-보헤미아 연합군이 비엔나 외곽의 전장터에서 오토만 터키군과 일대 접접을 벌였기 때문에 공성(Siege)이 아니라 전투(Battle)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두 차례의 전투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한 합스부르크의 신성로마제국과 오토만 터키의 전쟁이었으며 가톨릭과 이슬람의 대결이었다. 터키의 비엔나 공성은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면에서 양측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과연 터키의 비엔나 공성의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결과는 어떠했는지 간략하게 살펴본다.


 멀리 슈테판성당이 보이는 가운데 오토만 터키군이 비엔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