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터키/터키의 비엔나 공성

퇴각을 결심한 술라이만

정준극 2008. 6. 8. 07:05
퇴각을 결심한 술라이만


10월 초순이 되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더 이상 지하터널을 팔수도 없었다. 지하터널 작전에 실패한 터키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졌다. 지금까지 터키군의 사상자만 하더라도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질병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많았으며 매일밤 탈영병들까지 생겼다. 터키군은 심지어 말에게 먹일 마초(馬草)까지도 떨어진 상태였다. 충성심이 강한 술탄의 근위병들인 야니싸리(Janissary) 병사마저도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술탄 술라이만은 심중으로 퇴각을 결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10월 12일 술라이만은 긴급 참모회의를 소집하고 한번더 마지막으로 비엔나를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다만, 이번에는 군의 사기를 위해 비엔나에 입성하여 마음대로 약탈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터키군은 사기가 높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공격도 성공하지 못했다. 두터운 성곽을 뚫지 못했으며 더구나 비엔나군의 장창(長槍)에는 속수무책이었다. 10월 14일 밤, 터키군의 진영에서는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터키군이 퇴각하기 전에 포로로 잡은 비엔나 군을 무참하게 살육하는 소리였다. 개중에 항복한 비엔나 병사들은 그저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고 실토했다.


1430년대 독일의 란트츠크네헤츠


10월 중순이었지만 때 아닌 폭설이 사면을 덮었다. 터키군의 퇴각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터키군은 수많은 물품들과 대포들을 그대로 놓아둔채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겨우  브라티스라바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오스트리아군의 매복공격을 받아 큰 손실을 입었다. 그 후에도 터키군은 퇴각하는 도중에 간간히 공격을 받아 수많은 터키군 병사들의 목숨만 잃게 했다.


터키의 야니사리. 비엔나 1구 어느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기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