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이야기/비엔나와 페스트

알렉산더 예르신의 발견

정준극 2008. 6. 9. 10:08

알렉산더 예르신의 발견

 

역병(페스트)은 세균에 의해 감염되는 급성 질환이지만 박테리아가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낸 것은 1894년 스위스의 열대병의사인 알렉산더 예르신(Alexander Yersin)에 의해서였다. 그후 역병을 일으키는 세균(Bazillus)을 학명으로 ‘예르시나 페스티스’(Yersina Pestis)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세에는 단순히 공포의 역병(Plague)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질(Ruhr) 또는 천연두(Smallpox)도 하늘의  재앙인 역병으로 간주하였다. 중세에는 역병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행이나 파괴의 뜻으로 사용했다.

 

비엔나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


유럽에서 가장 심각하게 역병이 돌았던 때는1348년에서 1352년의 4년 동안이었다. 당시 약 2천5백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인구가 직간접적으로 호흡기 질환에 의한 역병에 시달렸다. 당시에는 호흡기 역병이 쥐벼룩에 물려 생기며 임파선(Bubonen)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에도 역병이 쉽게 옮겨진다고 믿었다. 비엔나가 역병에 시달린 것은 1349년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높은 감염률을 보여 글자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그런 소름끼치는 역병이 없었다. 그러나 그후 거의 4백년이란 기간동안 역병은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며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역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병자성사. 시신을 가득 담음 마차. 비엔나


역병에는 약이 없었다. 전염 경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방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에 등장한 것이 가톨릭교회였다.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진노로 역병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로지 성모에게 역병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구하였으며 이와 함께 성삼위일체가 역병을 물리쳐 줄수 있다고 믿었다. 그라벤(Graben)의 페스트탑(Pestsaeule), 또는 성울리히교회의 페스트탑은 모두 성삼위일체에게 역병의 물리침을 찬양한 것이다. 성울리히교회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우구스틴수도회의 이름 높은 수도사로서 아브라함 산크타 클라라(Abraham Sancta Clara: 1644-1709)라는 사람이 비엔나에 살고 있었다. 원래 슈바비아(Swabia)사람인 그의 이름은 한스 울리히(Hans Ulrich)로서 1668년에 비엔나에서 사제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1680년 ‘비엔나에 대한 경고’(Merke Wien)이라는 글을 남겼다. 비엔나의 역병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비엔나에 역병이 창궐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브라함은 대단한 설교자였다. 그의 설교는 매우 감동적이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는 대단히 영향력이 있었다. 그가 역병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의한 것이라고 설교할 때에 대중들은 그저 눈물을 좔좔 흘리며 아멘, 아멘으로 화답하였을 뿐이었다. 그러한 아브라함 산크타 클라라를 기념하기 위하여 슈타츠오퍼 뒤편, 부르그가르텐(궁정정원)의 정문 입구 옆에 기념상을 세웠으니 한번들 가서 보시라.

 

비엔나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 조각. 역병을 제압하는 아기 천사와 십자가를 손에 든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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