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이야기/비엔나와 페스트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Pestsaeule)

정준극 2008. 6. 9. 10:12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Pestsäule)

페스트기념탑

 

그라벤의 길한가운데에 있는 페스트조일레. 역병이 물러난 것을 기념하여 삼위일체에게 감사의 뜻으로 세운 조형물이다.

 

그라벤의 페스트탑(페스트조일레)은 아마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작품일 것이다. 1679년 비엔나에 대역병이 돌자 역병을 피해 비엔나를 떠나던 레오폴드1세 황제는 만일 역병이 곧 사라지면 감사의 탑을 세워 만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알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역병이 주춤해지자 비엔나시는 그 해에 우선 임시로 목재 페스트조일레를 만들고 상단에 성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조형물을 설치하여 황제의 뜻을 표현코자했다. 성삼위일체 조형물의 주변에는 수많은 천사들이(정확하게는 아홉천사: 아홉천사는 모든 품계의 천사를 의미함: Neun Chöre der Engel) 둘러싸고 있는 내용도 조각으로 만들어 설치했다. 역병이 물러난 1683년 레오폴드 황제는 거장 마티아스 라우흐밀러(Matthias Rauchmiller)에게 지시하여 정식으로 대리석 페스트조일레를 건립토록 했다. 그러나 라우흐밀러는 1686년 천사 몇 명만 조각해 놓은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존의 설계에 대한 변경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후 높이 69피트의 역병탑은 몇 명의 조각가들이 분담하여 건설하게 되었다.

 

페스트조일레(중간 부분에는 레오폴드1세 황제가 감사기도하는 모습)

                            

아랫단은 유명한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어라흐(Johann Bernhardt Fischer von Erlach)가 맡게 되었다. 전체 건설 책임은 파울 슈트루델(Paul Strudel)이 맡았다. 파울 슈트루델은 극장 건축의 대가인 이탈리아 출신의 로도비코 부르나치니(Lodovico Burnacini)의 자문을 받아 전체 탑의 모습을 구름 피라밋 형상으로 하였다. 천사들이 구름 사이에서 성삼위일체를 찬양하는 아래에는 레오폴드 황제가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하는 모습도 있다.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는 1693년 봉헌되었다. 기념탑 하단의 조각들은 토비아스 크라커(Tobias Kracker: 1658-1736)와 요한 벤델(Johann Bendel)의 작품이다. 비엔나의 랜드마크가 되어 있는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를 완성하는 데에는 장장 10년이란 기간이 걸렸다.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의 각지에도 페스트조일레들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건축되었다.  왜 삼위일체인가? 가톨릭 교회는 역병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발생했다고 설교했다. 그리고 역병을 퇴치하려면 삼위일체에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삼위일체 탑이 세워진 것이다.  조일레라는 단어는 기둥, 탑이라는 뜻이다.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는 레오폴드 1세 황제의 깊은 신앙심으로 인하여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감사하여 세운 것이지만 아울러 오스만 터키의 군대가 물러난 것을 감사하여서 세운 것이기도 하다. 터키의 2차 비엔나 공성은 1693년에 있었다. 페스트조일레는 하나님께서 비록 많은 죄를 지어서 용서받을수 없는 처지이지만 두번에 걸친 이방인(오스만 터키)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비엔나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서 자비로서 구원해 주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 레오폴드 1세가 하나님과 인간들의 중재자로서 하나님께 간절히 청원하여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페스트조일레는 세 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인간에 대한 사항으로 좌대의 3분의 1을 청원자로서 레오폴드 1세 황제의 모습을 중심으로 삼았다. 두번째는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천사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세번째는 상단으로서 거룩한 삼위일체를 표현한 것이다.

                                  

페스트조일레 상단의 삼위일체. 성부(하나님)와 성자(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비둘기).

                                          

그런가하면 좌대의 상당부분은 신성로마제국의 영광을 표현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는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3면에 걸친 기단의 중간 부분에는 신성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 황실이 관할하는 영토의 문장들을 설치했다. 서쪽으로 있는 문장은 신성로마제국의 방패 문장과 인너 외스터라이히의 영토들인 슈타이어마르크, 캐른텐, 크라인(Krain) 공국의 문장을 조각해 놓았다. 서쪽면과 동쪽면의 사이에는 엔강을 사이에 둔 상부오스트리아(오베레외스터라이히)와 하부오스트리아(니더외스터라이히)의 문장을 만들어 놓았다. 이 두 지역이야말로 합스부르크 황실의 핵심이 되는 영지이다. 서쪽 면은 성부에 봉헌한 내용이다. 동쪽 면에는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왕국, 보스니아 왕국의 문장을 마련해 놓았다. 동쪽 면은 성자에게 봉헌한 면이다. 성령은 북쪽 면에 배정되었다. 방패 문장은 보헤미아, 오버라우지츠(Oberlausitz)와 니더라우지츠(Niederlausitz), 그리고 슐레지아(Schlesien) 공국의 것들이다. 이렇듯 비록 페스트 퇴치를 기념하는 탑이지만 제국와 합스부르크의 영광을 내보이는 목적을 지닌 것으로 만들었다.

 

동쪽면에 있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왕국의 방패문장

 

페스트조일레에는 여러 개의 라틴어 글귀들이 적혀 있어서 무슨 뜻인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글귀들은 조일레 중간부분의 좁은 면에 마련되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생각하는 글귀들이다.

1. DEO PATRI CREATORI(창조주 성부)

2. DEO FILIO REMEMPTORI(구세주 성자)

3. DEO SPIRITUI SANCTIFICATORI(성령의 하나님)이라고 적혀 있다.

 

이와 함께 조일레의 서남면, 북면, 동면에 역시 라틴어로 상당히 긴 문장들이 적혀 있다. 라틴어를 알아서 무엇하랴마는 혹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고가 될수도 있으므로 소개코자 한다.

 

[서남면의 라틴어 문장] - 그라벤 큰길을 향한 면

TIBI REGI SOECULORIM IMMORTALI; UNI IN ESSENTIA ET TRINI IN PERSONIS, DEO INFINITE BONO, AETERNO ET IMMENSO, CUIUS DEXTERAE OMNIA SUNT POSSIBILIA, CUIUS SAPIENTIAE NIHIL EST ABSCONDITUM, CUIUS PROVIDENTIA IN SUA DISPOSITIONE NON FALLITUR, CUIUS MAIESTATE IMPLETUR UNIVERSUM, CUIUS MISERICORDIA SUPER OMNIA OPERA. 일단 번역해보면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왕이시고 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이시여, 끝없으신 선하심과 영원하심과 무한하신 당신께서는 오른 손으로는 무엇이든지 가능케 하시며 지혜로우심을 감추지 아니하시도다. 당신의 섭리와 역사하심은 실수가 없아옵고 당신의 뛰어나심은 온 우주를 채우시니 당신의 자비하심은 한없으시도다.'

 

[북쪽의 라틴어 문장] - 페터스플라츠 방향

TIBI, INQUAM, SANCTISSIMAE AC INDIVIDUAE TRINITATI; EGO LEOPOLDUS HUMILIS SERVUS TUUS GRATIAS AGO, QUAS POSSUM, MAXIMAS PRO AVERSA ANNO. MDCLXXIX. PER SUMMAM BEGINGNITATEM TUAM AB HAC VBRE ET AVSTRIAE PROVINCIA, DIRAE PESTIS LUE; ATQUE IN PERPETUAM DEBITAE GRATITUDINIS TESSERAM, PRAESENS MONUMENTUM DEMISSISSIME CONSERCRO. 감히 번역해보면 '거룩하시며 서로 불간분의 관계에 있는 삼위일체 당신이시여, 나 레오폴드는 당신의 겸손한 종으로서 당신께 감사하는 것 이외에는 할수 있는 것이 없나이다. 당신께서는 1679년 당신의 높으신 선하심으로 이 도시와 오스트리아 나라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역병을 물러나게 하셨나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념탑을 세우는 바입니다.'

 

성삼위일체에게 기도하는 레오폴드 1세

 

[동쪽의 라틴어 문장] - 슈테판성당 방향

SUSCIPE CLEMENTISSIME DEUS, SERVI TUI DEMISSE TE ADORNATIS VOTA; ET ME, CONIUGEM, LIBEROS, DOMUNQUE MEAM; POPULOS ET EXERCITUS MEOS; REGNA AC PROVINCIAS; CONTINUA MISERICORDIAE TUAE PROTECTIONE GUBERNA, CUSTODI, DEFENDE! ITA VOVI; ANNO DOMINI SALVATORIS NOSTRI IESU CHRISTI. 억지로 번역해 보면 '자비하시고 선하신 주여, 당신의 종들이 드리는 간구를 받으소서. 나와 나의 아내와 나의 아이들과 내 집안과 나의 백성들과 나의 귀족들과 나라와 지방들이 간구하나이다. 우리를 자비와 긍휼로서 지켜주시옵소서. 우리의 대속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해인 [1679년에] 봉헌하나이다.' 

 

합스부르크를 상징하는 독수리와 라틴어 기도문.

 

ä  ö  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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