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종로교회

정준극 2008. 6. 27. 06:13

수원종로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수원종로교회 

 

종로는 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원에도 있다. 옛날에 종각이 있었기 때문에 종로라는 거리 이름이 붙었다. 그 종각은 2008년 8월인가 화성축제 때에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바로 그 종로 네거리에 수원종로교회가 있다. 종로교회는 1899년 설립되었으므로 1999년으로 창립 100주년을 넘긴 유서깊은 교회이다. 나는 1942년부터 1954년까지 종로교회의 옆에 있었던 집에서 살았고 종로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종로교회가 사진에서 보듯 멋있고 웅장하지만 당시에는 2층 벽돌건물로 현재 건물의 4분의 1정도였다. 그래도 수원을 대표하는 서양식 건물중의 하나였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종로교회를 강점하고 자기들 병영으로 사용한 일이 있었다. 일본군들이 교회 옆에 심어져 있던 무궁화 나무를 마치 장난이나 하듯 칼로 모두 베어 버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본군들은 먹다 남은 허연 쌀밥을 교회 옆의 화장실이나 쓰레기장에 버렸다. 사람들은 그것마저 체면불구하고 주워서 먹었다. 우리 집도 먹을 것이 하나도 없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 저 삼일학교 뒷산 또는 용두각 지나 동장대에 올라가 나무껍질을 좀 벗겨 오라고 하셔서 그렇게 한 일이 몇번있다. 나무껍질을 끓여 먹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시간만 있으면 누님과 함께 부지런히 산나물을 캐러 다니셨다. 그걸로 국을 끓여 먹었다. 진짜 초근목피의 생활이었다. 아무튼 일제시대에는 없는 사람들의 식량사정이 그 정도였다.

 

 

수원종로교회 전면

 

나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동안은 북한공산당이 일으킨 6.25 전쟁 때문에 피난을 가야해서 종로교회의 유년주일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다행히 사변중에도 종로교회는 피해를 입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래서 휴전후 피난처에서 올라와서 다시 종로교회 주일학교에 다닐수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종로교회에 거의 붙어 있었다. 지금은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교회와 집 사이에는 조그만 마당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수수대를 가지고 칼싸움 놀이를 하는등 그 마당에서 놀았다. 교회 앞길에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약방(대학당약국), 잡화점, 책방 등이 있었다. 모두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운영하던 상점들이었다. 수복후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었을 때 나는 시간만 있으면 책방에 들려 새로 나온 학원잡지를 무료로 탐독하였다. 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대단히 어려웠다. 그래서 비록 사변후의 어려운 시기였지만 국민학교 6학년만 되면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보충수업을 했다. 나는 책방에서 학원잡지를 읽는 탓에 저녁 보충수업을 몇번이나 지각했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대단한 꾸중을 들었다.

 

 

새로 지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수원 종로교회의 모습 

 

종로교회 유년주일학교에 다닐때 분반 선생님은 매향학교 선생님이셨던 윤해순 선생님이었다. 지금 기억나는 선생님의 말씀은 '조용하세요! 제발!'이라는 것 정도이다. 아이들이 무던히도 말을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년주일학교에서 야외예배 가는 날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기억에 남은 소풍장소는 서호, 광교 수리조합, 팔달산 서장대, 그리고 화령전이었다. 화령전이야 내가 다니던 신풍국민학교 바로 옆에 있었으니 별로 감회가 깊을수 없었다. 야외예배 가는 것이 약간 싫었던 것은 점심(벤또) 준비 때문이었다. 적어도 삶은 계란 한개 정도는 들고가야 친구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의연하게 먹을수 있는데 그럴만한 사정이 되지 않아 속상했던 때문이었다. 어떤 아이는 병에 든 사이다를 가져왔기에 '와, 대단하다'라고 부러워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사이다 병에 맹물을 넣고 와서 그걸로 점심을 때우고 있던 장면도 생각난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므로 맹물이 점심이었다.

 

 

 종로교회 뒤편에는 화성군청이 있었다. 지금은 무슨 병원이다.

 

일제시대로부터 종로교회 옆에는 화성군청이 있었다. 최근 보니 무슨 정형외과의 커다란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성군청은 일제가 화성군을 총괄하고 수탈하던 곳이었다. 수원은 참으로 역사적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지지대고개로부터 시작한 수원 관련 유적은 오산 방향의 용주사와 융릉에 까지 펼쳐 있다. 사족: 종로교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회가 수원제일감리교회로서 화성행궁과 화서문-서북 공심돈 중간쯤에 있다.

 

종로 네거리의 종각은 2008년 10월쯤 복원되었다. 여민각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이름이다. 종각이 복원되는 것에 즈음하여 화성행궁 앞의 넓은 광장이 시원하게 정비되었다. 참으로 대단한 복원사업이었다. 수원시는 국민들의 세금을 그나마 이런데로 잘 썼으므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화성행궁 앞의 홍살문을 통해 바라본 종로교회. 한때 종로교회 바로 뒤에 화성군청이 있었다. 화성군청 자리에는 무슨 병원이 들어섰다. 화성행궁 앞 광장은 도립병원, 수원경찰서, 신풍국민학교로 가는 길이 있었고 양 옆에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2009년 봄에 광장이 조성되었다. 광장의 바닥에 깐 타일 그림과 조각을 보는 것도 역사탐방의 일환이다.

 

종로교회와 종로삼거리. 뒤편이 화성박물관이며 앞은 화성행궁의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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