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화성행궁

정준극 2008. 6. 27. 06:28

화성행궁(華城行宮)

 

신풍루. 신풍이란 임금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다. 정조대왕의 수원사랑을 보여주는 명칭이다.

 

수원에서 신풍국민학교를 다녔지만 학교 바로 옆에 화성행궁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그저 화령전이라는 귀신 나올듯한 기와집만 있는줄 알았다. 일제는 화성행궁을 고의적으로 자기네들 행정사무실 또는 병원으로 변형하여 사용했다. 그래서 옛날 궁전의 모습을 볼수 없었던 것이다. 화성행궁의 정문에는 신풍루라는 현판이 높직히 걸려 있다. 신풍동, 신풍국민학교라는 이름은 신풍루에서 비롯한 것 같다. 신풍루라는 이름은 정조대왕이 친히 붙였다고 한다. 정조는 임금의 자리를 아들(순조)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상왕으로서 수원에 내려와 살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극진히 모시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정조는 수원의 화성행궁을 새로운 고향으로 생각하여 신풍루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풍루라는 명칭은 어딘가 고전스럽지 못하다. 마치 중국 자장면집 이름처럼 들린다. 해방후 수원 성안에는 종로에서 남문 가는 사이에 중국집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자장면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 중국집의 자장면 한번 먹는 것이 온 아이들의 소원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수원에 오래 살았던 분에게 그 중국집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물어 보아 기록으로 남겨야 겠다. 종로에서 남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동아약국은 사변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약국이다. 원래는 종로교회에 속한 상가였다. 화성군청과 종로교회의 사이에 있었다고 보면 된다.

 

 화성행궁의 정문 누각인 신풍루  

봉수당에 좌정한 혜경궁 홍씨. 환갑잔치상을 받았다.

 

 

 정조의 원행도를 그린 담벽

봉수당 

 

화성행궁은 일제시대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일제는 화성행궁을 고의적으로 훼손하였다. 조선왕조의 정조에 대한 백성들의 향수를 없애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래서 화성행군 안에 있는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개조하여 사용하였고 북군평은 수원경찰서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객사인 우화관에는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으니 그것이 현재의 신풍초등학교이다. 또한 일제는 화성행군의 중앙건물을 자혜의원으로 사용하였으니 이것이 나중에 도립병원이었다. 이처럼 화성행궁은 일제에 의해 여러 갈래로 찢어져 사용되었다가 최근에 들어와 복원하였다.

 

 

 정조대왕이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생일을 축하하여 인사드리고 있는 모습 

정조대왕은 틈만 있으면 책을 읽으며 공부했다. 배워야 산다. 배워서 남주나. 

봉수당의 옥좌  

봉수당

 

 

 유여택

 장락당

 

신풍루는 정조대왕이 직접 작명한 것이다. 정조 자신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이다. 정조는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 상왕이 되어 화성행궁에 거처하여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여생을 살기로 생각했다. 정조는 이에 대비하여 화성행궁을 창덕궁과 같은 정전 형식으로 확장코자 했다. 신풍초등학교는 신풍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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