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화홍문

정준극 2008. 6. 27. 06:32

 

 

일곱개의 수구가 있는 화홍문. 오른쪽 언덕에 있는 정자는 용두각, 또는 방화수류정.

 

화홍문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옛날에 어린시절 내가 수원에서 살았을 때 집안에 이불 호청과 같은 큰 빨래가 있으면 어머니가 화홍문 근처의 냇가(수원천) 빨래터에 기시어 빨래를 하셨다. 함께 갔던 나는 빨래터 주변을 돌아다니며 놀거나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인근의 우시장에 가서 소들을 구경했다. 화홍문 부근의 우시장은 꽤나 유명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원 천주교 성당 뒤편이었다. 우시장이 열리지 않는 날에 가보면 소들을 묶어 놓는 말뚝들이 마치 바둑판 처럼 박혀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도 재미 있었으니 그 시절에는 참으로 재미 있는 일도 없었다고 생각된다. 우시장이 서는 날이면 대단치도 않았다. 소들이 움메거리는 소리와 소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국밥이나 막걸리를 파는 노점들의 소리때문에 어수선했다. 수원 시내 한 복판에 있었던 우시장은 주로 인근 화성과 용인에서 온 소들을 팔고 사는 곳이었다. 일제의 그 어려웠던 시기에 하나밖에 없는 재산인 소를 팔고 살 자리를 찾아 멀리 만주로 떠나야 하는 서글픈 사람들의 그림자도 우시장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수원천의 억새풀과 분수

 

위 사진은 멀리서 본 화홍문이다. 무슨 고층 건물이 화홍문의 뒤에 당당하게 서 있어서 화홍문의 미려한 모습이 가려져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시 난개발의 여파? 아무튼 그 고층 건물 때문에 화홍문의 운치가 푹 떨어진다. 한두해전, 수원 농진청의 국제 회에외 참석했던 어떤 잘 아는 외국 손님과 함께 화홍문에 갔던 일이 있다. 그 외국 손님은 화홍문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여 이같은 아름다운 문화유산의 주변을 잘 보존되어야 함을 특히 강조하였다. 화홍문 앞 냇갈의 양편에는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어서 보기에 좋다. 하지만 봄이면 버드나무에서 꽃가루가 날리는 바람에 눈을 뜨고 다니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에는 버드나무 그늘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많았다. 수원에서 장기깨나 두는 사람들은 화홍문 앞길에 모여 소일했다고 생각된다. 당시 냇갈에는 제법 물이 많았다. 아이들 허리춤까지 오는 깊은 곳도 있었다. 여름에 너무 더워서 참기가 어려우면 화홍문 앞 냇갈로 멱을 감으러 왔었다. 나도 자주 간것은 아니고 한두번 갔었다. 원래 물놀이를 가려면 저 멀리 광교 수리조합이나 원천 저수지에 가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너무 멀어서 갈수 없기 때문에 할수 없이 화홍문 앞 냇갈로 더위를 식히려 갔던 것이다. 수영복이란 것은 있을수도 없는 처지여서 사르마다(빤스)를 입고 멱을 감았다. 하지만 행여 주일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들이라도 지나가면서 볼까봐 은근히 마음 조리며 물놀이를 하였다.  겨울에는 냇갈에서 썰매들을 탔다. 얼음이 얇게 어는 때가 많아서 여러 아이들이 썰매를 타다가 빠져 곤혹을 치루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썰매를 타다가 어름이 꺼져서 옷을 적시고 감기 걸린 적이 몇차례 있었다. 화홍문과 수원천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화홍문의 벽돌 무늬

벽돌무늬가 십자가형이다.  

 화홍문 앞 개울에 분수도 만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여름철에 아이들이 멱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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