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화령전(華寧殿)

정준극 2008. 6. 27. 06:18

화령전(華寧殿) 

 

 

군복을 입은 정조대왕 어진

 

화령전은 신풍초등학교의 바로 옆에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거의 폐가와 다름 없었으나 담벽과 대문등을 복원하여 그나마 잘 보존하고 있다. 어떤 자료에 보면 화령전은 정조대왕이 할아버지 영조대왕의 영정을 만들어 모셔 놓은 전각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은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셔 놓은 곳이다. 화사한 군복(융복)을 입은 모습이다. 정조의 어진(초상화)은 2005년에 새로 그린 것이다. 최근 수원시와 경기도의 화성 복원계획에 따라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화령전의 건물들이 모두 중건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화령전이라는 말은 화성에서 화(華)를 취하고 시경의 귀령부모(歸寧父母), 즉 돌아가신 부모에게 문안을 여쭙는 것이 도리라는 말에서 령(寧)을 가져온 것이다.

 

정조의 어진(초상화)를 모신 화령전의 운한각. 새로 중건하여 든든하게 보였다.   

 

화령전은 1801년 순조가 임금이 되자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세운 영전(靈殿)이다. 정조대왕은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사당을 세울 것인데 기왕이면 화성에 세워 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다고 한다. 정조는 1800년 6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영전은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구별되는 건물로 비록 돌아가신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았지만 마치 살아계실 때 처럼 문안을 드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임금이 직접 간략하게 보고하는 곳이다. 정조의 효심이야 하늘이 알아주는 대단한 것이었지만 뒤를 이은 순조도 한 효심하였다. 화령전은 화성행궁과 연계되어 있는 건물이지만 행궁과는 달리 단청을 하지 않았다. 종묘의 건물들에 단청을 입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것이 오히려 더 멋스럽게 보였다.   

 

운한각에 사정이 생겨서 어진을 잠시 옮길 필요가 있으며 운한각에 연결되어 있는 이안청(移安廳)으로 옮겼다.   

 

화령전은 신풍초등학교와 담장을 함께 하고 있다. 필자가 신풍국민학교에 다닐때 학교 옆에 있는 이 집들이 무엇인지 몰라 상당히 궁금해 했었다. 하루는 동무들과 함께 슬며시 쪽문(협문)을 통해 들어가 보니 우중충한 집 몇채가 있을 뿐 도무지 사람이 사는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신풍국민학교에 자주 나타난다는 귀신들이 아마 이 집에 사는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쭈뼛해 했다. 그래도 호기심이 발하여 좀더 건물에 접근한후 집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려 하는데 저쪽에서 웬 어른이 '누구냐? 이놈들!'이라고 소리치기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나온 일이 있다. 그것이 내가 화령전이란 곳에 들어가 보았던 처음이었으며 그 이후로는 오늘날까지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일제가 화령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었다. 다른 편에 있던 화성행궁은 무슨 병원과 행정사무실로 사용하느라고 상당히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풍화당(風化堂)은 재를 올릴 때에 관계자들이 미리 와서 준비하고 대기하는 곳이다. 풍화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사회의 풍속과 기강을 교화시킨다는 의미이다.  

화령전의 한쪽에 있는 제정(祭井)이다.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위편에 있는 것이 우물이고 아래편은 수조이다. 수조에는 금붕어들이 여러 마리가 한가롭게 놀고 있다.   

운한각에 사용한 목재들. 신선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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