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화성관광열차

정준극 2008. 6. 27. 06:42

 

용의 머리를 앞세우고 임금님이 타시던 가마(어연)를 줄줄이 연결하여 객차로 만든 수원관광열차(실은 자동차)가 수원시내의 유적지들을 돌아 다닌다. 그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을 수원에서 보낸 나로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해방후에 그런 자동차가 수원시내를 돌아다녔다면 그것만으로도 구경꺼리가 되어 아이들이 줄줄 따라다녔을 것이다. 수원관광열차는 수원의 고적 명소들을 두루 다니며 관광토록 해준다. 마침 화홍문에 온 관광열차가 있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수원에는 남수원역이 있었다. 여기서 여주까지 가는 수여선(水麗線)과 남인천까지 가는 수인선(水仁線)이 출발했다. 외가가 신갈에 있었기 때문에 간혹 신갈에 갈 때에 수여선을 타고 원천역을 지나 신갈까지 간 일이 있다. 어머니와 함께 외할머니를 뵈러 신갈에 갈 때에는 종로에서부터 걸어서 갔던 일도 있다. 어머니는 그 먼 신갈까지 땡볕에 짐을 머리에 이시고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신작로를 걸어서 가셨다. 아마 차비를 아끼시느라고 걸어서 가셨던 것 같았다. 게다가 수여선을 타려면 종로에서 남수원역까지 걸어가야하는데 그 거리도 만만치 않으므로 아예 신갈까지 걸어 가시기로 하셨던 것 같았다. 동인천 배다리를 지나 창영동에는 삼촌이 사셨다. 그래서 여름 방학에 삼촌 집에 놀러가기 위해 형과 함께 수인선을 타고 남인천까지 가서 동인천까지 걸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수여선이든 수인선이든 모두 협궤 열차였다. 마치 놀이동산의 관광열차와 같은 작은 기차였다. 그래도 석탄을 때어 연기를 뿜어내며 기적소리 약간 우렁차게 달렸다.

 

나는 수여선을 타고 신갈 지나서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수인선은 인천에 가느라고 한두번 타 보았다. 수인선을 타면 종착역까지 가야하므로 남양, 소래, 송도를 거쳐 남인천까지 오래 기차를 탔다. 객차의 좌석은 한편에만 있었다. 객차의 폭이 좁아서 양편에 좌석을 두지 못했다. 수여선이든 수인선이든 시골 냄새가 물씬했다. 주로 장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을 본 물건들을 광주리나 보자기에 담아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탄 사람들이었다. 수인선을 타면 소금끼가 도는 바다냄새까지 맡을수 있었다. 이제 협궤 열차는 구경을 할수 없게 되었다. 아마 철도박물관에나 가야 볼수 있을것 같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수원에 모시고 가서 관광열차를 태워드리고 싶다. 어머니는 수원에 10여년을 사셨으면서도 방화수류정 한번 제대로 구경가지 못하셨다.

 

화홍문 등 수원시내 네곳에서 타고 내릴수 있으며 요금은 1,500원. 하루 네차례 운행한다던가 했다. 

 

팔달문의 위용

 담장이넝쿨로 뒤덮인 수원 성벽(팔달문 쪽에서)

'발길 따라, 추억 따라 > 수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안문  (0) 2008.06.28
정조대왕  (0) 2008.06.27
수원시장  (0) 2008.06.27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0) 2008.06.27
화홍문  (0) 200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