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문
장안문은 수원성의 북문이다. 수원성에는 네개의 대문이 있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다. 동문은 창룡문이라고 했고 서문은 화서문, 남문은 팔달문, 북문은 장안문이라고 했다. 수원성에 대한 여러가지 역사절 사실과 내력등에 대하여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른 자료에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6.25 사변 이후의 얘기 한토막을 소개코자 한다. 6.25 사변으로 수원도 무수한 폭격을 받아 거의 잿더미가 되었다. 북문인 장안문은 거의 완전히 부서졌다. 동문은 석조 부분만 남고 지붕과 누각은 모두 불타버렸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북문은 부서지고,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 있고, 남문은 남아 있고.".....어떤 여자아이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고무줄도 하였다. 이제는 네곳의 성문이 모두 복원되어 위용을 뽐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장안문의 위용
장안문과 안내소
서문 가까이에 공심돈이 있다. 3층으로 된 초소이다. 원래 수원성에는 공심돈이 세개가 있었다. 6.25의 전란 속에서 그래도 온전히 살아 남은 것은 화서문 옆의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뿐이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이 누각의 이름이 공심돈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공심돈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람 이름인줄 알았다. 이 누각을 세운 공심돈이라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부르는줄 알았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역사를 배우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수원성을 축조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배워야 산다. 아는 것이 힘이다.
서북공심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