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수원

수원시장

정준극 2008. 6. 27. 06:40

지동시장 입구

 

현재의 지동시장은 영화시장과 함께 수원시장의 한 부분이었다. 수원시장은 수원천을 끼고 매향교에서부터 남문 일대를 거쳐 예전 버스터미널이 있던 곳 까지를 말했다. 사변 이후에는 수원천 한쪽 길의 양편이 모두 구멍가게로 뒤덮혀 발길을 옮기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제 수원천 쪽의 가게들은 일찌감치 정리되었고 길 한쪽에만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사변후 수원시장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는 만물상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드니 집에 남아 있던 사기그릇이나 놋주발, 놋수저, 심지어는 돌 맷돌까지 들고 나와 길에 펼쳐놓고 팔았다. 시장터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사업은 군복 염색이었다. 군복은 민간인이 입지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비공식적으로 군복을 구하면 우선 검정색으로 염색하여 입고 다녀야 했다. 그러자니 염색공장이 문전성시였다. 물론 소규모 영세업들이었다. 드럼통 하나에 염색 물감을 풀어 넣고 군복을 염색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염색공장에서는 옷수선도 함께 했다. 아이들에게 군복을 입히려면 아이들의 키를 단번에 크게 할수 없으므로 옷을 줄여야 했다. 그래서 옷수선집 장사는 꽤나 그럴듯 했다. 시장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가게는 튀김집이었다. 아이들로서는 뻣뻣한 오징어 다리에 밀가루를 입혀 노릇노릇하게 튀긴 것이 무척 먹고 싶었지만 돈주고 사먹을 형편은 되지 않아 대신 가게 앞에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오징어 뎀뿌라(튀김)를 사먹는지 관찰하는 것으로서 먹고 싶은 마음을 달랬다. 일설에 의하면 튀김 집의 기름은 수원공군비행장에서 나온 비행기 기름을 쓴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 비행기 기름이라면 휘발유 연료일텐데 그걸로 어떻게 오징어 튀김을 만들수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었다.  

 

기왕에 지동시장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예전에는 아이들이 장난삼아 지동시장을 쥐똥시장이라고 불렀다. 시장치고 쥐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지동시장에는 유난히 쥐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지동시장을 쥐똥시장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사변후 모두 먹고 살기 힘든 판에 쥐들이라고 편히 앉아 먹을 것을 대령해 주기를 기다릴수 없으므로 그저 낮이건 밤이건 온동리를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웠다. 수원천에 버리는 시장 사람들의 쓰레기는 쥐들의 후생과 번영에 한 몫을 하는 것이었다. 사변후 나라에서는 날로 늘어나는 쥐를 조금이라도 억제하기 위해 국민학교 학생들에게조차 집에서 돌아 다니는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봉투에 넣어 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쥐꼬리 만한 월급'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쥐꼬리는 짧지 않고 상당히 길다. 마치 오징어의 긴 다리처럼 길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오징어의 긴다리를 구해 다리의 빨판을 잘 떼고 두들겨서 흙칠을 하고 봉투에 넣어 쥐꼬리라고 바치는 일이 있었다. 비위가 약하신 선생님들로서는 쥐꼬리 검사를 엄중하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므로 대강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오징어 다리가 쥐꼬리로 둔갑하여 검사에 패스하곤 했다. 하지만 불운한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대신 제출했다가 검사에 걸려 교실 밖 복도에서 두손을 들고 벌을 서야했다. 복도에는 모든 반의 아이들이 왔다갔다 하므로 혹시 아는 여학생들이 벌서는 모습을 보면 극도로 창피하므로 고개를 푹숙여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다. 

  

수원천변의 수원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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