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正祖大王)
팔달산 기슭에 정조대왕 기념상이 넓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수원 북쪽 외곽의 장안구 파장동에 지지대고개라는 곳이 있다. 옛날에는 파장리라는 곳이었다. 정조대왕이 화산능(현 융건릉)에 참배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 올 때 이 곳까지 와서 저 멀리 화산능이 보이지 '아버님의 산소가 저기 보인다. 어서 가자! 왜 이리 늦느냐?'면서 느릿느릿한 길을 재촉했기 때문에 지지대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능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정조대왕이 이곳까지 와서 한번이라도 더 화산능을 보고 가기 위해 좀 늦게 가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지지대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지대고개는 지지부진(遲遲不進)이라는 말과 연관이 있다. 지지대고개에는 지지대비(遲遲臺碑)가 있어서 유래를 설명해주고 있다. 현재 지지대고개 한편에는 효행기념관이 있어서 정조대왕의 효성 이야기와 수원 화성에 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효행기념관은 효행공원 안에 있다.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 가보아야 할 곳이다. 6.25 전쟁 때 지지대고개에서 프랑스군들이 빨갱이 인민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인민군들이 많이 죽었지만 프랑스군도 상당수 희생되었다. 지지대고개의 효행공원 일각에는 프랑스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화산릉(융건릉)
지지대고애에서 수원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노송지대가 있다. 장안구 이목동이다. 정조대왕이 화산능(혀재의 융건릉)의 관리인에게(정확하게는 식목 책임자)에게 내탕금 1천냥을 내려 소나무들을 심게 했다고 한다. 어릴 때에 소나무를 일부러 보기 위해 멀리 파장리까지 걸어 갔다가 온 기억이 난다. 노송들은 6.25 전쟁에도 그다지 피해를 보지 않았다. 어릴 때 들은 얘기여서 신빙성은 없지만 아무튼 노송과 관련하여서 이런 스토리가 있었다. 정조대왕이 화산능에 행차할 때에 지지대고개를 넘어서면 멀리 능이 보이게 되는데 노송들이 시야를 가려 잘 보이지 않게 되자 '아버님의 능이 잘 보이지 않으니 저 노송들을 베어버려야 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겁을 먹은 노송들이 스스로 몸을 구부려 지지대고개에서 화산능이 잘 보이도록 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얘기는 소나무에 송충이가 많이 생겨 잎을 갉아 먹는 바람에 소나무들이 말라죽게 되자 정조대왕이 '이놈들아, 아무리 미물이라도 어찌 우리 아버님을 추도하여 심은 소나무들을 해칠수가 있는가?'라며 손수 송충이를 잡아 질근질근 씹었다는 것이다. 그후로 정조에게 잡히지 않고 살아 남은 송충이들은 정조의 효성에 감읍하여 노송지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얘기다. 정조대왕이 화산능에 도착하여 보니 나무에 송충이가 많아 큰 문제이므로 송충이 한마리를 대표적으로 씹어 먹었더니 그후로는 송충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화산능 옆에 있는 고찰 용주사(龍珠寺)도 정조대왕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때의 고찰인 용주사가 황폐되어 재건하였을 때 정조대왕이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로 힘차게 올라가는 꿈을 꾸어 기왕에 절의 이름을 용주사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후 정조대왕은 용주사의 중건을 위해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수원성(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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