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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막의 디바 캐스린 그레이슨

정준극 2008. 8. 30. 18:25

은막의 디바 캐스린 그레이슨(Kathryn Grayson)


은막의 디바인 캐스린 그레이슨(Kathryn Grayson)은 1922년 2월 9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윈스턴-살렘(Winston-Salem)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캐스린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가서 살게 되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캐스린은 집 근처의 시립오페라하우스에 놀러가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시립오페라하우스의 청소부는 아무도 없는 무대에서 어떤 소녀가 혼자서 노래부르는 것을 보고 가만히 듣다가 노래가 끝나자 ‘얘, 넌 도대체 누구길래 무대까지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냐?’고 물었다. 어린 캐스린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몰래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에 감동한 청소부는 친구인 시카고시빅오페라의 음악코치인 프란시스 마샬(Frances Marshall)에게 캐스린을 소개해 주었다. 열두살의 캐스린은 시카고에 가서 성악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캐스린 그레이슨의 음악인생이 시작되었다.

 

캐스린 그레이스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처녀가 된 캐스린 그레이슨은 은막의 스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진출하였다. 마침 MGM에서는 데아나 더빈(Deanna Durbin)과 같은 예쁘고 명랑하며 재주가 있는 소프라노 배우를 구하고 있었다. 이미 놀라운 인기를 얻고 있던 데아나 더빈은 유니버설 슈트디오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데아나 더빈은 캐스린 그레이슨보다 한 살이 위였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MGM이 만든 Thousands Cheer(대갈채)와 Anchors Aweigh(닻을 올리고), 그리고 Two Sisters from Boston(보스턴에서 온 자매)에 출연하였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톱스타로서의 놀라운 재능을 여실 없이 보여주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캐스린 그레이슨은 1953년 뮤지컬 Kiss Me, Kate(키스 미 케이트)를 영화로 만든 작품에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키스 미 케이트’에서는 바리톤 스타 하워드 킬(Howard Keel)과 공연(共演)하였다. 사실, 하워드 킬과는 몇 년 전부터 콤비로서 영화에 출연했었다. 1951년에는 Show Boat(쇼 보트)에 함께 출연했었고 1952년에는 Lovely To Look At(사랑스런 그대)과 Roberta(로베르타)에 함께 출연했었다. 캐스린 그레이슨이 소프라노로서 최고의 인기를 끈 것은 마리오 란자와 함께 출연한 영화 The Toast of New Orleans(뉴올리언스의 토스트)와 That Midnight Kiss(한밤의 키쓰)에서였다. 이들 영화에서 캐스린 그레이슨은 마리오 란자와 함께 관중들을 감미로운 음악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특히 The Toast of New Orleans에서는 푸치니의 ‘나비부인’ 장면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만들었다.

 

 

뮤지컬 영화 쇼보트의 포스터 (위로부터 하워드 킬, 캐스린 그레이슨, 에버 가드너). 오른 쪽 사진은 할리우드에서 촬영중.


MGM이 뮤지컬 영화를 더 이상 제작하지 않게 되자 스타로서 캐스린 그레이슨의 경력도 마감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캐스린 그레이슨은 Show Boat, Rosalinda, Kiss Me, Kate, Naughty Marietta, The Merry Widow등의 뮤지컬에 주역으로 출연하여 아름답고 신선한 미모와 연기로 인기를 끌었으며 여러 상도 받았다. 이렇듯 뮤지컬 경력이 있기 때문에 1962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Camelot(카멜롯)이 공연될 때에 여주인공을 맡았던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가 사정상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자 즉각적으로 캐스린 그레이슨에게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카멜롯에서 게네베레(Guenevere)왕비의 역할을 맡아 대성공을 이룩하였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이후 16개월동안 카멜롯의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하여 뮤지컬 스타로서의 명성을 굳건히 쌓았다. 카멜롯이 미국순회공연에서는 전좌석이 매진되는 놀라운 기록이 세워졌다. 그후 캐스린 그레이슨은 건강이 나빠져서 더 이상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영화 '뉴올리온스의 토스트'에서 노래부르는 캐스린 그레이슨


캐스린 그레이슨의 오랜 꿈은 오페라 출연이었다. 영화배우도 좋고 뮤지컬 스타도 좋지만 그보다고 오페라 디바가 가장 큰 꿈이었다. 그리하여 캐스린 그레이슨은 1960년대에 라 보엠, 나비부인, 라 트라비아타, 지하세계의 오르페우스(Orpheus in the Underworld: 오펜바흐) 등에 프리마 돈나로서 출연하여 또 다른 인기를 끌었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연극배우로서도 재능을 보여주었다. 캐스린은 간혹 코미디 연극에도 출연하였다. 예를 들면 Night Watch, Noises Off, Love Letters, Something's Afoot 등이다. 1950년대에는 TV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연하였다. 1956년에는 제느널 일렉트릭의 프로그램인 Shadow on the Heart에 존 에릭슨(John Ericson)과 함께 출연하여 에미상 후보에까지 올라갔던 일이 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안젤라 랜스베리(Angela Lansbury)가 주연을 맡은 미스터리 연속드라마인 Murder, She Wrote에도 출연하였다. 

 

테너 마리오 란자와 함께 출연한 영화


캐스린 그레이슨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할리우드 배우로서는 제인 파웰(Jane Powel), 앤 밀러(Ann Miller), 시드 채리스(Cyd Charisse), 에스터 윌리엄스(Esther Williams), 앤 블라이스(Ann Blyth)등이 있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이들과는 달리 오래도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마 당시 할리우드 배우중에서 가장 커다란 팬클럽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 캐스린 그레이슨은 아이다호주립대학(ISU)에서 성악을 지도하고 있다.


캐스린 그레이슨은 할리우드에서 두 번 결혼하였다. 첫 번 결혼은 배우 존 셀튼(John Shelton)이었다. 두 번째 결혼은 배우이며 가수인 자니 존스튼(Johnnie Johnston)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딸 하나를 두었다. 1950년대에는 거부 하워드 휴스(Howard Hughes)와 염문이 있었다. 하워드 휴스와는 한때 약혼까지 한 일이 있다. 하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모에 재능이 많은 캐스린 그레이슨은 1941년부터 1994년까지 2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첫 영화는 1941년의 Andy Hardy's Private Secretary(앤디 하디의 개인비서)라는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촬영한 영화는 1994년의 다큐멘타리인 A Century of Cinema(영화 백년사)였다.  

 

영화 '뉴올리언스의 토스트'에서 춤을 추는 캐스린 그레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