챨스 5세 Charles V(Carlos V: Karl V)
Ernst Krenek (에른스트 크레네크)
에른스트 크레네크
타이틀: Charles V (Karl V: 카를5세). 작곡자 자신이 대본을 썼다. 전 2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이 있는 무대작품
초연: (1차 버전) 1938년 6월 22일 프라하 신독일극장, (2차 버전) 1958년 5월 11일 뒤셀도르프 도이체스 오퍼 암 라인(Deutsches Oper am Rhein)
주요배역: 챨스5세(Bar), 후아나(챨스5세의 어머니: A), 엘레오노레(챨스5세의 여동생: S), 페르디난트(챨스5세의 남동생: T), 이사벨라(챨스5세의 부인: S), 후안 데레글라(산 유스테 성당의 신부: 대사), 프란치스코 보르지아(예수회 신부: 대사)
사전지식: 챨스5세는 크레네크의 작품중 가장 중요한 오페라이다. 한스 휘츠너(Hans Pfitzner)의 팔레스트리나(Palestrina)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오페라이다. 크레네크는 챨스5세를 대단히 응축되고 복잡한 스타일로 작곡했다. 챨스5세는 1938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이래 1950년 에쎈(Essen)에서 공연될 때까지 12년 동안 한번도 공연된 일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챨스5세는 국제 오페라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말하자면 챨스5세를 공연하지 않으면 현대감각의 국제무대에서 낙후될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에피소드: 챨스5세는 프라하에서 초연 이후 곧이어 비엔나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무한정 연기되었다. 비엔나에서 초연을 가진 것은 1984년이었다. 비엔나에서의 공연은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현대적 감각의 무대였다. 권력의 주도권을 잡는데 대한 옳고 그름을 논쟁하는 무대였다.
브레겐츠 페스티발 공연에서의 칼 5세(카를로스 5세). 2008년
줄거리: (전체 대강 줄거리: 챨스5세는 젊은 수도사인 후안 데 레글라(Juan de Regla)에게 외적 압력과 자기 자신의 윤리, 그리고 종교적 이상주의 사이에서 사로잡혀 보낸 인생에 대하여 고해한다. 후안은 챨스5세를 점점 이해하기 시작하지만 예수회 신부인 보르지아(Borgia)는 챨스5세에게 참회의 고해를 하라고 주장한다. 예수회 신부는 양심에 충실한 인물이다.
제1파트. 챨스5세(Karl V)는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스페인의 산유스테(San Juste) 수도원에 가서 젊은 신부인 후안 데 레글라(Juan de Regla)를 만나 고해를 한다. 챨스5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해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기의 내부에 양분된 성격이 있음을 인정하고 두가지 상반된 이념 때문에 번민했음을 설명한다. 챨스5세는 고해를 통하여 자기의 전생애를 되돌아보고자 한 것이다. 챨스5세는 젊은 시절 기독교 세계가 정신적 소생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루터가 로마 가톨릭에서 완전히 뛰쳐나온 후에는 교회내의 연합을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에 유럽의 나라들은 국가이익을 생각하여 개신교 편에 서기도 했고 로마 가톨릭에 남아 있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들은 챨스5세의 교회연합 염원에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 국왕인 프란시스1세는 챨스5세의 누이동생인 엘레오노레(Eleonore)와 결혼하였지만 교회문제에 있어서는 평화를 위한 챨스5세의 협상 제안에 비협조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챨스5세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터키를 지원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독일 병사들이 로마를 약탈하는 만행을 자행함으로서 교황과 개신교간의 갈등의 골을 깊어만 갔다.
술탄 술레이만
챨스5세는 왕비인 이사벨라(Isbella)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이교도에 대하여 무자비할 정도의 박해를 감행하였다. 하지만 왕비가 세상을 떠나면서 챨스5세에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군주가 되라고 당부한 후부터는 박해를 중지하였다. 나아가 챨스5세는 종교를 수호하는 일에 피를 흘려도 좋다는 처음의 결심을 포기하였다. 이렇게 고해한 시점에서 챨스5세는 감정이 격화된듯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다.
칼 5세와 이사벨라 왕비
제2파트. 챨스5세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고해에도 불구하고 후안 데 레글라 신부는 예수회 신부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Francisco Borgia)의 말을 듣고 나서 챨스5세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입장이 된다. 보르지아 신부는 믿음과 도덕은 변할수 없는 성격임을 지적하면서 챨스5세가 신앙적으로 무관심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그 말은 들은 후안 데 레글라는 챨스5세를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한다. 보르지아 신부는 챨스5세가 국왕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기의 감정을 개입하였다고 비난하였다.
국민들이 돈 카를로 왕자를 더 지지한다.
잠시후 정신을 잃었던 챨스5세가 깨어난다. 챨스5세는 자기의 희망을 젊은 시절에 달성하려고 노력했었다는 얘기를 한다. 챨스5세는 루터가 세상을 떠난후 로마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하였던 독일인들을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개신교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반발은 결국 챨스5세와 종교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술탄 술레이만(Suleiman)의 입자만 강화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챨스5세는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후안 데 레글라 신부는 챨스5세의행동이 외적인 환경요인에 의해 집행된 것이라는 점을 용인하였다. 그러나 보르지아 신부는 죽어가는 챨스5세에게 죄를 회개하는 참회의 고해를 하라고 주장한다.
전투에 나선 스페인의 카를(챨스)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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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6세
프로멘탈 알레비의 그랜드 오페라
크레네크의 '샤를르 5세"가 나오기 전에 파리에서는 프로멘탈 알레비(Fromental Halevy)가 '샤를르 6세'라는 오페라를 만들어서 인기를 끌었다. 대본은 카시미르 들라비뉴(Casimir Delavigne)와 제르맹 들라비뉴(Germain Delavigne)형제가 썼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Guere aux tyrans(폭군에 대한 전쟁)이라는 노래는 콘서트 곡목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초연은 1843년 3월 15일 파리 오페라의 살르 르 플르티에(Salle Le Peletier)에서였다. 그후 수정본이 1847년과 1848년에 공연되었고 다시 수정되어 1850년에 공연되었다. 그러다가 잠시 잊혀져 있다가 1870년 4월에 테아트르 리릭크에서 다시 선을 보였다. 이때 오데트 역할을 소프라노 로시느 블로흐(Rosine Bloch)가 맡아서 박수를 받았다. 테아트르 리리크에서는 도합 22회의 공연이 있었다. '샤를르 6세'는 브뤼셀, 헤이그, 뉴올리언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바타비아. 바르셀로나, 멕시코, 마르세이유, 함부르크, 밀라노 등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2005년에 콩피에느에서 리바이발된 것이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샤를르 6세'의 주요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 왕세자(도팽: Le Dauphin: T). 샤를르 6세의 아들로서 프랑스 왕위 계승자
- 샤를르 6세(Charles VI: Bar). 프랑스 왕
- 라이몬드(레이몽: Raymond: B). 농부로서 제대군인
- 오데트(Odette: MS). 레이몽의 딸
- 이사벨르(Isabelle de Baviere: S). 프랑스 왕비
- 베드포드 공작(Le duc de Bedford: T). 영국 귀족 등이다.
장소는 프랑스이며 시기는 아진쿠르전투(Battle of Agincourt)가 끝난지 몇년 후이다. 프랑스왕 샤를르 6세는 광인이라는 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르 6세는 영국군이 침공하자 프랑스를 프랑스군을 이끌고 그들을 몰아내고자 한다. 이때에 농부 레이몽의 딸 오데트가 감연히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샤를르 6세를 도우러 온다. 마치 장다크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한편, 샤를르 6세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틈을 타서 왕궁에서는 이사벨르 왕비와 영국의 귀족인 베드포드 공작이 음모를 꾸며서 자기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샤를르 6세의 아들인 왕세자(도팽)와 바꿔치기 하려고 한다. 이와함께 이사벨라 왕비는 왕을 대신하여 통치를 하면서 폭정을 일삼는다. 이로 인하여 신하들 사이에서는 이사벨라 왕비에 대한 반감이 팽배한다. 신하들 중에 샤를르 6세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은 만일 베드포드의 아들이 왕세자가 된다면 프랑스는 영국이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심히 걱정한다. 하지만 증거도 없고 하여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음모를 계시로서 알아채린 오데트는 속히 왕궁으로 가서 왕비와 베드포드 공작의 음모를 저지하고 샤를르 6세의 아들을 프랑스의 정당한 왕세자로서 옹립한다. 얼마후 영국군을 물리친 샤를르 6세는 그러나 부상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샤를르 6세가 세상을 떠날 때에 많은 신하들이 새로운 프랑스의 왕이 될 왕세자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저 유명한 Guerre aux tyrans! jamais en France, Jamais l'Anglais ne regnere(폭군과 전쟁을! 프랑스에서는 결코 없으리라. 영국인이 다스리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이다.
알레비의 '샤를르 6세'. 파리 오페라 공연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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