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 )
Philip Glass (필립 글래스)의 전위오페라
필립 글래스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인 미국의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가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공연시간이 길어서 제대로 공연하려면 쉬는 시간이 없이 거의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장편이다. 오페라라고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베르디, 푸치니 스타일의 일반적인 오페라와는 내용도 다르고 차원도 다르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페라의 장르로 볼때에는 전위(前衛)오페라에 속한다. 작곡자나 연출가는 내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무리 들어도 무어가 무언지 모를 작품이다. 제목이 ‘해변의 아인슈타인’이기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약간의 로맨스와 함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는 내용이 아닌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 도대체 이 오페라에는 스토리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그저 상징적인 아이콘(Icon)일 뿐이며 간혹 무대의 한쪽에 앉아서 바이올린이나 연주하는 역할이다. 그러니 제목만 보고 아인슈타인의 인간적인 고뇌나 혹은 사랑 이야기를 기대했다가는 헛물켜기가 십상이다. 그나마 이 오페라에서는 전반부에 위대한 과학자이며 휴머니스트이고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인슈타인을 조명하지만 후반부는 그 역시 일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존재라는 결론으로 유도한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 무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간과 장소는 현재의 어느 곳이든 상관없다. 제1막 1장은 무대에 철도가 등장한다. 철도는 지상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움직이는 것을 표현한다. 2장은 법정이다. 침대까지 있다. 법정의 판결에는 우리 자신의 판단뿐 아니라 편견까지도 작용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제2막은 우주선이 있는 비행장이다. 새로운 차원에 대한 아이디어가 개시된다. 이어서 밤 열차이다. 기차를 갈아타듯 각각 다른 우주로 이동하는 시간을 표현한다. 제3막 1장은 법정과 교도소이다.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우리를 족쇄처럼 채우는지가 설명된다. 2장은 역시 우주선이 있는 비행장이다. 광활한 우주가 전개되고 우주의 타임머신이 작동한다. 제4막 1장은 건물과 기차이다. ‘우주를 위한 시간’이 강조된다. 2장은 침대만 놓여 있는 장소이다. 우리 자신을 가로 막고 있는 아이디어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한다. 3장은 또 다시 우주선이다. 우주 타임머신에 도착하여 몸과 정신을 동시에 자유스럽게 날아가도록 한다. 자유, 혼란, 핵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표현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 포스터
필립 글라스(1937-)는 미국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대표하는 가장 성공적인 작곡가이다. 미니멀리즘은 최소의 장식과 악기편성으로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여 맥동적이고 최면적인 효과를 내는 스타일을 말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작곡기법이다. 필립 글라스는 지금까지 10여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모두가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작품이다. 다른 일반적인 오페라에서는 사건들이 발생하는 시간이 오페라가 진행되는 순서로 전개되지만 필립 글라스의 오페라에서는 모든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어제, 오늘, 내일이 동시에 등장할수 있으며 모두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
우주선의 장면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1976년 프랑스의 아비뇽음악제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 사람들은 특이한 공연에 놀람과 충격을 받았다. 관객들은 종래의 개념에서 벗어난 무언가 예측할수 없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이 작품이 20세기의 예술 활동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 중의 하나라고 입을 모았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와 연출가인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1941-)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높이 떨치게 해준 것이었다. 아비뇽에서의 초연 이후, 사람들은 이 오페라의 특이함과 혁신적인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선전하였다. 그래서 함부르크, 파리, 베오그라드, 베니스, 브뤼셀, 로테르담 등 유럽의 다른 극장에서도 공연되었으며 그해 11월에는 드디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진출하여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메트(Met)에서의 공연은 좌석이 완전매진이었다. 메트 제작자는 ‘아방 갸르드는 이제 일상화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무튼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걸작 중의 하나로 인정을 받았다.
우주선의 장면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필립 글래스가 세계적 인물을 주제로 삼아 만든 3부작 중의 첫 번째이다. 두 번째 것은 1979년의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를 주인공으로 삼은 ‘사티야그라하’(Satyagraha)이며 세 번째 것은 고대 이집트의 신비스런 인생관을 보여주는 1983년의 ‘아크나텐’(Akhnaten)이다. 필립 글래스는 아인슈타인, 간디, 아크나텐이 모두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변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므로 주제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자인 로버트 윌슨은 필립 글래스가 세계 역사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켜준 인물들을 주제로 하여 오페라를 만들겠다고 하자 챨리 차플린 또는 아돌프 히틀러를 제시하였으나 필립 글래스가 즉시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간디와 아인슈타인이 윌슨과의 타협안으로 제시되어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댄스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초연 이후 거의 40년이 지났으며 마지막 공연이 있은 때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그것도 국제적인 순회공연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2012년 3월부터 시작하여 영국에서 처음 공연되었으며 북미에서도 처음 공연되는 대장정이었다. 런던에서는 바비칸(BAM)이 공연을 주도하였고 이외에도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교(Cal Performance), 토론토 소니 센토(Luminato), 암스테르담(De Nederlandse Opera), 프랑스의 몽플리에(Opera et Orchestre National de Montpellier Languedoc-Rousillon), 미시간대학교(University Musical Society)에서 공연되었으며 또한 계속 공연이 계획되어 있다. 이같은 리바이벌은 주로 초연에서 로버트 윌슨이 제작했던 것을 모델로 삼고 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출연진은 베우로서 여성 2명, 남성 1명, 어린이 1명(스피킹 역할), 그리고 16명으로 구성된 혼성합창단이다.
Knee play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재래적인 오페라의 틀을 깨는 작품이다. 우선 전통적인 오케스트라를 도입하지 않고 신테사이저, 목관악기, 사람의 음성등을 반주로 삼았다. 대본의 경우에도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다. 어떤 이야기를 대사로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단어들을 반복하는 형태이다. 예를 들면, one, Two, Three....를 계속 반복하거나 계명을 Do, Re, Mi, Fa... 식으로 솔페즈(Solffege)로 부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짧은 시구(詩句)를 넣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으로서 마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하는 형태이다. 무대장치는 더구나 특별하다. 강력하게 반복되는 이미지를 일종의 시리즈적인 테마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 추상무용이 병렬되어 진행된다. 추상무용은 미국의 저명한 안무가인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여사가 안무한 것이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전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4개의 막이 서로 연계되어 있으며 또한 이른바 ‘무릎 공연’(Knee plays)라는 짧은 장면이 시리즈로 구분되어 있다. ‘무릎 공연’이라는 것은 출연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공연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공연시간은 약 다섯 시간이 걸린다. 다른 오페라에서 볼수 있는 중간 휴게시간은 없다. 하지만 관객들은 공연 도중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 올수 있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음반으로 레코딩한 것은 3시간 24분으로 되어 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반이기 때문에 시간이 상대적으로 단축되었다.
Trial의 무대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Knee play 1
- Train
- Trial 1 (Entrance, Mr. Bojangles, All Men Are Equal)
- Knee play 2
- Dance 1
- Night train
- Knee play 3
- Trial 2/Prison (Prermaturely Air-Conditioned Supermarket, Ensemble, I Feel the Earth Move)
- Dance 2
- Knee play 4
- Building
- Bed(Cadenza, Prelude, Aria)
- Spaceship
- Knee play 5
Knee play 2
I Feel the Earth Move는 Trial 2/Prison 섹션의 세 번째 곡이다. 그런데 이 곡만이 다른 파트와는 달리 소프라노 색소폰과 베이스 클라리넷을 사용하였고 이 오페라의 다른 파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전자 키보드는 제외하였다. 이 곡에서는 크리스토퍼 노울스(Christopher Knowles)의 시구가 별로 의미 없이 주섬주섬 소프라노 색소폰과 베이스 클라리넷의 반주에 맞추어 낭독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곡은 이 오페라에서 사용한 다른 두 곡과 함께 글래스가 ‘3부작에서의 노래들’이라는 앨범으로 만들었다. 이 앨범에는 3부작의 다른 오페라, 즉 사티야그라하와 아크나텐에서도 사용된 노래도 포함되었다.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섹션인 Trial 2/Prison은 캐롤 킹(Carole King)의 앨범 ‘타페스트리’에 나오는 곡명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Night Train(나이트 트레인: 야간열차)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처음 공연되었을 때 가히 혁명적인 무대라는 평을 받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이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공연 중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예술 평론가이며 제작자인 존 로크웰(John Rockwell)은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처음 보고 나서 ‘이런 공연은 처음 보았다. 마치 밤하늘에 있는 어두운 별을 볼수는 없으나 느낄수는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어두운 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대사와 음악의 시너지 효과는 이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마치 아인슈타인처럼 시간을 초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 시대의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생애를 소중히 여기는 경험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다시 만나야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지닌 풍미를 만끽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Knee play 3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음악은 대단히 웅대하고 서사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최면상태를 유도하듯 반복되는 형태여서 마치 꿈속에서 소리의 퍼짐을 듣는 듯하다. 실제로 이 오페라는 한정된 공간에 정착한 듯하며 기괴하여 다른 세상의 음악처럼 들린다. 이 작품은 엔터테인멘트를 위한 작품이라기보다는 경험을 위한 작품이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렇다고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당시라고 해도 오페라를 공연해서 이익을 보는 경우는 많지 않았으므로 ‘해변의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수 있겠지만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무대가 스펙터클하며 새로운 기법들을 도입했기 때문에 제작비가 더 많이 들었다. 물론 그렇게 하여 미니멀리즘(음렬주의)의 랜드마크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런 찬사가 흥행에 이익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첫해 공연의 성공은 글래스와 윌슨의 명성을 크게 올려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에게 재정파탄을 안겨 준 것이었다. 그후로부터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제작비 부담으로 거의 공연되지 못했다. 그러한 때에 세계 순회공연을 가지게 된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2012년의 세계 순회공연은 필립 글래스의 탄생 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Knee play . 한쪽 구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인슈타인
'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 > 추가로 읽는 366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 아놀드 쇤버그의 '기대'(에어봐르퉁) (0) | 2008.09.07 |
---|---|
29. 존 케이지의 '유로페라' (0) | 2008.09.07 |
27.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이집트의 헬렌' (0) | 2008.09.07 |
26. 알렉산더 쳄린스키의 '난쟁이' (0) | 2008.09.07 |
25. 페루치오 부소니의 '독토르 파우스트' (0) | 2008.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