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ith (유디트) - 유딧
Aleksandr Serov (알렉산드르 세로프)
알렉산더 세로프
타이틀: Judith (러시아어로는 Yudif라고 쓴다.) 전5막. 구약의 경외서(經外書)인 유딧서를 기본으로 복잡한 경로를 거쳐 러시아어 대본이 완성되었다(에피소드 참조 요망).
초연: 1863년 5월 16일 생페터스부르크
주요배역: 유디트(이스라엘 여인: 유태 전사의 미망인: S), 아브라(유디트의 노예: Ms), 오지아스(베툴리아의 장로: B), 챠르미스(베툴리아의 장로: B), 엘리아힘(대제사장: B), 아키오르(홀로페르네스에게 항복한 암몬군 사령관: T), 홀로페르네스(아시리아 사령관: B), 아스파네세스(홀로페르네스의 가신: B), 바고아스(홀로페르네스 하렘장: T)
음악 하이라이트: 2막 유디트의 독백, 3막 홀로페르네스의 행진곡, 3막 무용곡, 4막의 오달리스크의 춤곡, 4막 인도의 노래 [사족: 세로프의 ‘유디트’는 1863년의 초연에서부터 인기를 끌었지만 1898년부터는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Fyodor Chaliapin)이 홀로페르네스 역할을 맡아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유디트 역의 Sarah Blanche Sweet
사전지식: 세로프의 ‘유디트’는 스토리가 러시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더구나 ‘유디트’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세로프의 ‘유디트’가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로프의 ‘유디트’는 러시아 음악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차이코브스키는 세로프의 ‘유디트’로부터 영향을 받아 ‘오를레앙의 처녀’(The Maid of Orleans)를 작곡했고 무소르그스키는 비록 미완성이었지만 오페라 ‘살람보’(Salammbo)를 작곡했으며 보로딘은 ‘이고르 공’(Prince Igor)을 작곡했고 루빈슈타인도 그의 성경이야기 오페라를 작곡했다. 오페라 ‘유디트’에서 동양적인 요소는 3막과 4막에서 두드러진다. ‘유디트’의 동양적인 요소는 이미 글링카가 ‘루슬란과 루드밀라’에서 예시한바 있다. ‘유디트’의 4막에 나오는 ‘인도의 노래’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사드코’(Sadko)에 나오는 ‘인도 손님의 노래’와 비교할수 있다. 이처럼 세로프의 ‘유디트’는 러시아 오페라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08년 모스크바에서의 '유딧' 공연시 홀로페르네스 역을 맡은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의 모습을 그린 작품. 알렉산더 골로빈 작. 이 작품은 현재 모스크바의 트레탸코프(Tretyakov) 갤러리에서 소장하고 있다.
에피소드: 오페라 ‘유디트’의 대본은 복잡한 경로를 통하여 완성되었다. 세로프의 ‘유디트’가 나오기 3년 전에 이탈리아의 작곡가 파올로 자코메티(Paolo Giacometti)가 Giuditta(주디타)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1860년 생페터스부르크에서 공연한 일이 있다. 주디타를 보고 감명을 받은 세로프는 마침 생페터스부르크를 방문한 이탈리아 순회오페라단을 위해 유디트 스토리를 다시 오페라로 만들기로 했다. 세로프가 잡아 놓은 오페라의 대강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반 주스티니아니(Ivan Giustininani)라는 이탈리아계 러시아 사람이 이탈리아어로 된 대본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러시아 작곡가에 의한 작품을 이탈리아 오페라단이 이탈리아어로 공연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러시아 오페라단이 공연하려면 대본을 러시아어로 바꾸어야 했다. 콘스탄틴 즈반쪼프(Konstantin Zvantsov)등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 대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였다. 시인인 아폴론 마이코프(Apollon Maykov)가 일부 대사를 추가했다. 그렇게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 사이에 세로프는 대사가 없는 음악을 미리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대사는 나중에 음악에 맞추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태어났다. 사족: 클림트의 유디트는 이 유디트를 그린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구약성경에는 유딧서가 포함되어 있으나 개신교의 구약성경에는 들어 있지 않다.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을 찾아간 유딧. 더치 내셔널 오페라
줄거리: 시대는 기원전 6세기경. 무대는 예루살렘 인근의 베툴리아(Bethulia) 성이다. 제1막. 앗수르(아시리아)의 홀로페르네스(Holofernes) 군대가 베툴리아 성을 포위하고 있어서 성내의 백성들은 공포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는 성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막았기 때문에 성내에서는 먹을 물이 없어서 고통이다. 장로들인 오지아스(Ozias)와 챠르미(Charmi)는 백성들에게 앗수르 군대가 성으로 들어올수 있는 모든 길을 막고 있으며 성내에 있는 마지막 우물도 말랐다고 말하면서 한탄한다. 그런중에도 대제사장 엘리아힘(Eliachim)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백성들은 어서 앗수르 군대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케 해달라고 요청한다. 장로들은 앞으로 5일 낮과 밤을 지낸후에도 여호와께서 응답이 없으시면 그 때에 항복하여 앗수를 군대를 성안으로 들어오게 하자고 말한다. 그때 유태 병사들이 아키오르(Achior)를 붙잡아 데리고 온다. 아키오르는 암몬군 사령관이었으나 앗수르의 홀로페르네스에게 항복하여 섬기고 있다가 벌을 받아 베툴리아 성밖에 내던져진 것을 유태 병사들이 발견하여 데려온 것이다.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에게 성의 포위를 풀고 유태인의 신인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설득했지만 분노한 홀로페르네스가 아키오르를 베툴리아 성 앞에 결박하여 세워 놓고 나중에 앗수르 군대가 베툴리아 성을 파괴하는 모습을 지켜보도록 했던 것이다. 성내의 백성들은 모두 소리를 높여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제2막. 유디트는 닷새 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이 무엇이든지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유디트는 유태 용사의 아내였으나 남편이 앗수르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유디트는 아름다운 모습과 뛰어난 신앙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여인이다. 앗수르 군대를 물리칠 방도를 생각하고 있던 유디트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움으로 홀로페르네스를 물리쳐 자기 백성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유디트는 장로들을 만나 자기의 계획을 얘기하고 여노예인 아브라(Avra)만을 데리고 적진으로 가겠으니 승낙해 달라고 말한다. 장로들이 승낙하자 유디트는 분연히 성밖의 적진으로 향한다.
제3막.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이다. 후궁(Odalisques)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홀로페르네스는 이들을 장막에서 내보내고 다음날 베툴리아를 총공격할 준비를 한다. 앗수르의 병사들이 앗수르의 진영을 넘보는 유디트를 붙잡아 홀로페르네스의 앞으로 데려온다.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의 아름다움을 보고 놀라며 ‘앗수르의 여인 중에 이만한 아름다움이 없노라’고 감탄한다. 홀로페르네스가 유디트에게 자기를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자 유디트는 성으로 들어갈수 있는 비밀 통로를 가르쳐 줄테니 성을 함락한 후에 자기와 여노예를 자유스럽게 해 달라고 말한다. 즉, 성이 함락될 때에 신변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이다. 홀로페르네스는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간계를 부린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리고 심지어 앗수르의 왕비가 되어 줄것을 넌지시 요청한다. 앗수르 군대의 진영은 앗수르와 홀로페르네스의 권력을 찬양하는 큰 잔치를 베푼다.
제4막. 앗수르의 진영에서는 춤과 노래가 한바탕 어우러진다. 모두들 유디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중에 홀로페르네스의 가신인 아스파네세스(Asfaneses)만이 무언가 불길한 예감으로 차거운 모습이다. 이에 홀로페르네스는 아스파네세스가 자기와 유디트에게 불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분노로서 가신을 검으로 찔러 죽인다. 이 모습을 본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잔혹한 행동에 놀라며 자기 자신도 잘못하면 저런 상태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두려워하지만 하나님께 서약한 것을 죽음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다. 홀로페르네스는 전군에게 내일 아침 베툴리아 성을 전면 공격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장막 안으로 들어간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홀로페르네스는 유디트의 발아래 쓰러진다. 유디트는 시종들에게 그를 침대에 눕히도록 하고 모두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한다. 시종들과 병사들이 밖으로 나가자 유디트는 지니고 있던 칼을 꺼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다. 유디트는 아브라에게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루에 담도록 하고 둘이서 어둠을 틈타 재빠르게 도망하여 베툴리아성에 무사히 도착한다.
제5 막. 베툴리아 성내의 백성들은 마침내 장로들이 언약한 닷새가 지나고 여섯째 날의 아침을 맞이하였지만 아무런 징조가 없자 낙망 중에 있다. 백성들은 이제 어찌할수 없으니 성문을 열고 앗수르의 대군을 맞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대제사장 엘리아힘이 백성들을 막지만 소용이 없다. 갑자기 성문 밖에서 유디트의 외침이 들린다. 성문 위에 올라선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높이 치켜들고 보인다. 앗수르의 군대는 혼돈 속에 퇴각한다. 모두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찬양한다. (사족: 그후 유디트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구혼을 받지만 평생을 조용하게 혼자서 살았다고 한다.)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고 있는 유딧. 카르바지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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