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a는 인간이 아니다!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디바(Diva)라고 한다. 여신과 같은 경지로 간주한다. 디바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마리아 칼라스가 노르마의 타이틀 롤을 맡았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마치 여신처럼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너무나 감격한 관중 및 평론가들을 입을 모아 마리아 칼라스를 여신(디바)라고 부르며 찬사를 보냈다. 오페라 디바들은 전설을 만들며 명성을 유지한다. 일반 사람들보다는 더 폭 넓은, 더 풍부한 삶을 산다. 그것이 팬들이 바라는 Diva의 삶이다. 그러나 참으로 평상적이지 않은 면도 상당히 있다. 심하게 말해서 괴팍하기까지 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기도 한다.
마리아 칼라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습이 있는 날이다. Diva는 예외적로 연출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감독이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 대수롭지도 않은 사항인데 이 지시를 거절한다. 별다른 주장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감독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자기가 대우를 받고 싶은 생각에서 일 것이다. 아무튼 지시를 받은 Diva는 영국식 악센트를 쓰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아이 카안트!!’ (I can't!). 못하겠다는 소리이다. 눈물을 쏟으며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만일 회사에서 당신 비서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한다면 당장 보따리 싸고 나가라고 고함을 칠 것이다. 하지만 연출자, 무대 감독은 Diva 에게 약하다. 져 줄수 밖에 없다. 관객들은 Diva를 보러 오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한 행동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디바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혹독한 훈련과 극기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행동이야말로 오페라적 예술의 자연 발로이다. 감정의 격화를 극대화하는 최고의 드라마틱 오페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라. 그 주인공은 이해하면서 디바의 개인적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맞지 않은 생각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디바의 특이한 행동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자기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행동일수도 있다.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디바의 특이한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전설적 인물로 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하여 어떤 행동이던지 할수 있다. 그래야 오페라의 전당에서 정상의 위치를 계속 확보할 수 있다.
* 격분한 헨델
흘러간 Diva의 얘기 한토막. 프란체스카 쿠쪼니(Francesca Cuzzoni)라는 이탈리아 소프라노는 제멋대로에 거만하기로 유명했다. 지휘자의 지시를 거부하기가 일수였고 작곡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카덴짜를 고치며 멋대로 노래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날 쿠쪼니는 헨델 작곡의 오페라 오토네(Ottone)에서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아리아 부르기를 거부하였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그 유명한 헨델 자신이었는데도 그런 트집을 부렸다. 쿠쪼니는 헨델보다 더 갈채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유명한 헨델을 제압할수 있다는 생각으로 감히 아리아 부르기를 거부하였던 것은 오산이었다. 쿠쪼니의 오만한 고집에 헨델이 가만 있을리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만일 쿠쪼니가 계속 말을 안 들으면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도록 했다. 결국 쿠쪼니는 헨델에게 무릎 꿇고 사과를 하였다. 만일 요즘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휘자는 고소당해서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 위자료를 내야 했을 것이다.
조지 프레데릭 헨델
* 산적과 테너
미국의 오페라 계에서는 어느 테너의 얘기가 심심찮게 오르내린 적이 있다. 이 테너가 멕시코를 여행하다가 무장 강도들에게 납치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강도들은 상당히 지적수준이 높아서 오페라 애호가들이었다. 테너가 자기는 내일 밤 멕시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주연이기 때문에 가야하니 보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자 오페라 팬인 산적 두목은 그가 정말 테너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아리아를 한번 불러 보라고 했다. 아리아만 잘 부르면 오페라 애호가의 입장에서 자비를 베풀어 살려 주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테너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나는 돼지들 앞에서 노래 부를수 없다, 무대도 아닌 곳에서, 분장도 하지 않고, 의상도 입지 않고 아리아를 부르란 말이요? 죽으면 죽었지 그리는 못하오...’ 산적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오페라 테너라고 인정하고 풀어 주었다.
* 넬리 멜바 (Nellie Melba) 이야기
오페라를 애호하는 사람치고 저 유명한 넬리 멜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주 출신의 이 매력적인 여인은 19세기 말, 오페라의 황금 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디바중의 디바였다. 얼마나 인기었나면, 넬리 멜바 이야기를 담은 영화까지 만들어졌으며 멜바가 즐겨 마시던 칵테일은 피치 멜바(Peach Melba)라는 이름을 붙여 오늘날까지도 애용하고 이다. 호주에서는 Melba Toast 라는 것도 있다. 멜바가 즐겨 먹던 토스트 스타일을 말한다. 멜바는 원래 Mitchell 이라는 사람의 딸이었지만 예명(Stage name)으로 멜본 원주민의 이름을 따서 멜바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넬리 멜바
(오페라 계에서는 누구를 부를 때 이름 대신에 성만 부르는 것이 거의 관습처럼 되어 있다. 카루쏘의 이름은 엔리꼬이지만 이 세계적 테너에게 엔리꼬라고 부르는 것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뿐이다. 마찬가지로 멜바의 이름은 넬리이지만 그를 넬리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들 멜바라고 부른다. 작곡가의 경우에는 더욱 분명하다. 모차르트의 원래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다. 애칭으로는 볼피라고 한다. 하지만 그를 아마데우스나 볼피라고 부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그저 모차르트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냥 모차르트라고 하면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까지를 말하는지, 또는 그의 후손을 말하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당시 멜바에 대한 인기는 대단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마돈나보다도 더한 인기였다. 그런 Melba 인데 성격은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보통이고 시기와 질투심도 대단했다. 자기보다 많은 박수를 받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미워했다. 같은 무대의 출연자들을 하녀나 하인 부리듯이 심부름을 시켰고 제대로 심부름을 하지 못하면 모욕을 주었다. 자기보다 돋보이는 의상이나 악세사리를 했으면 바꾸라고 지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같은 무대에서 다른 소프라노가 부르는 아리아를 무척 싫어했다. 자기 이외의 사람이 멋진 아리아를 부르는 것은 참을수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 어느 때는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를 공연하는 중 다른 소프라노가 아리아를 너무 아름답게 부르는 것을 보고는 그 소프라노에게 트집을 부려 울고 나가게 한 후, 다음 공연에서는 자기가 그 소프라노의 역할까지 한꺼번에 맡아 하는 기현상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천연스러웠다. 물론 박수는 많이 받았지만.
존 맥코맥
런던에서 테너 존 맥코맥(John MaCormack)이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되었다. 벨리나의 노르마였다. 맥코맥은 무대를 훌륭하게 압도하였지만 사람들의 갈채를 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함께 공연한 멜바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틴 콜을 받기 위해 맥코맥이 멜바를 에스코트해서 무대로 나가려고 하자 멜바가 맥코맥을 밀치며 함께 나갈 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른 어느 누구도 Melba와 함께 무대에 나가서 커튼콜을 받을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본격 무대에 진출하는 맥코맥은 멜바와 함께 갈채를 받지 못했고 대신 다른 조연급 출연자들과 함께 공동으로 박수를 받았을 뿐이었다.
* 칼라스와 테발디
가장 유명한 디바의 이름을 두명만 말하라고 하면 당연히 칼라스와 테발디를 들수 있다. 오페라와 관련된 모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들이다. 20세기 중반에 세계의 오페라계는 이른바 두 진영으로 나뉜다. 친 칼라스 그룹과 반 칼라스 그룹이다. Pro-Callas 그룹은 칼라스의 무대를 압도하는 타고난 연기력, 오페라를 극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음색, 거침없는 열정적인 성격을 찬양한다. 그래서 오페라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우선 칼라스를 연상하게 마련이었다. 칼라스는 프리마 돈나의 생명은 노래에 연기가 합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오페라 가수들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비중을 두어 노래했다. 무대에서 아리아만 잘 부르면 그것으로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연기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칼라스의 경우는 달랐다. 이런 관습을 타파하려고 도전했다. 칼라스 노래를 들어 보라. 따듯하면서도 정열적인, 잔잔하면서도 감정에 호소하는, 그러면서도 피를 끓게 하는 격정을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의 참 모습이었다.
레나타 테발디
칼라스를 비방하는 사람들조차 칼라스의 무대 연기에 대하여는 결점을 찾을수 없었다. 하지만 칼라스의 음색에 대하여는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반면에 Anti-Callas 사람들은 칼라스의 라이발로 알려진 테발디를 찬양한다. 침착하면서도 폭이 넓은 테발디의 음성을 찬양한다. 칼라스 추종자들은 테발디의 연기가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같다고 얘기한다.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두 라이발인 칼라스와 테발디에 대한 얘기는 끊임이 없다.
* 신사 카루소
오페라 싱거들이 라이발 의식으로 서로 헐뜯기만 하고 시기와 질투만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오페라의 주역이면서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그들도 결국 인간이다. 카루소는 하늘이 준 소리를 타고 난 사람이다. 그의 노래는 비단결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강렬한 힘이 담겨 있다. 푸치니가 그의 라 보엠에서 처음으로 카루소의 노래를 듣고 물었다. ‘누가 당신을 나에게 보냈나요? 하나님인가요?’ 카루소는 멋있고 이해심 많은 신사였다. 어느 날 카루소는 멜바가 밀치는 바람에 커튼콜의 기회를 잃은 존 맥코맥을 공연 후에 만났다. 맥코맥은 위대한 테너 카루소를 만나자 ‘세계 최고의 테너께서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카루소는 ‘당신께서 바리톤이 된 이후부터이지요’라고 하면서 감싸주었다. 어느날 카루소가 라 보엠을 공연할 때였다. 거의 끝날 무렵, 함께 공연하던 베이스가 목에 갑자기 이상이 생겨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카루소는 동료인 베이스를 일부러 포옹하면서 그의 얼굴이 객석으로 향하지 않게 하고 그가 불러야 할 파트를 대신 불렀다. 위대한 테너가 베이스 역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지휘자만이 알고 있었다.
엔리코 카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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