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편의 토스카가 나올뻔!
오페라 토스카(Tosca)는 베르디의 작품이 될뻔했다. 만일 토스카가 베르디의 오페라였다면 어떤 작품이었을까? 아마 라 트라비아타와 리골레토를 능가하는 걸작중의 걸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푸치니의 토스카가 걸작중의 걸작이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베르디는 토스카에 대한 스토리를 듣고 나서 ‘오라, 참 좋은 이야기이구만! 그래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작곡을 염두에 두었으나 결국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베르디가 토스카를 포기한 것은 순전히 건강상의 이유에서였다. 너무 연로하여 더 이상 오페라 작곡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가 되어 토스카를 포기했던 것이다. 토스카를 오페라로 만들려던 또 다른 작곡가가 있다. 알베르토 프란케티(Alberto Franchetti)였다. 그의 오페라 아스라엘(Asrael)은 이미 푸치니의 작품보다 훨씬 전에 메트로에서 공연된바 있다. 토스카를 작곡하겠다는 프란케티의 집념은 대단했었다. 하마터면 푸치니의 작품목록에서 빠져 나갈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프란케티도 토스카를 완성하지 못했다. 만일 프란케티가 토스카를 오페라로 작곡했다면 어떤 작품이 되었을 것인가? 아마 프란케티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기록상으로만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푸치니가 토스카를 작곡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푸치니는 역사의 비난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베르디 (1813-1901) 프란케티 (1860-1942) 푸치니 (1858-1924)
푸치니는 두 번째 오페라인 에드가(Edgar)를 완성하고 나서 어느날 유명한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가 타이틀 롤을 맡은 사르두(Sardou)의 연극 토스카를 보러 갔다. 연극은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푸치니로서는 알아듣지 못하였지만 무대에서의 연기만 보고서도 무슨 내용인지 충분히 이해할수 있었다. 푸치니는 옛날에 베르디가 그랬던 것처럼 ‘참으로 훌륭한 스토리이다. 오페라로 만들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푸치니는 악보출판가인 줄리오 리코르디(Giulio Ricordi)와 대본가인 루이지 일리카(Luigi Illica)를 만나 연극 토스카를 오페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나누었다. 친구들은 ‘아, 그거야 좋을 대로 하시구려!’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푸치니는 당장 실천하지 못했다. 마농 레스꼬(Manon Lescaut)를 만들어야 했고 한편으로는 라 보엠(La Boheme)에 대한 관심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푸치니의 귀에 프란케티가 토스카를 오페라로 만들려고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악보출판가인 리코르디는 오래전에 대본가인 일리카에게 토스카의 대본을 써달라고 요청했으며 일리카가 대본을 완성하자 이것을 프란케티에게 건네주었다는 것이다. 리코르디는 푸치니뿐만 아니라 프란케티의 오페라 악보도 출판해 왔다. 또 다른 소문에 의하면 베르디 선생께서 너무 연로하시어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토스카를 작곡하려는 생각을 접으셨다고도 하므로 프란케티에게 작곡을 의뢰했다고도 한다. 푸치니는 단 하루 밤 만에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토스카를 작곡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리코르디로부터 당장 토스카의 대본을 받아내어 '토스카는 내것이다'라며 작곡을 착수했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프란케티가 토스카의 작곡을 포기하자 리코르디가 토스카의 대본을 푸치니에게 주고 어서 오페라로 만들어보라고 독촉하였다고 한다. 어쨌든 일리카가 쓴 토스카의 대본은 푸치니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또 어떤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리코르디가 프란케티에게 토스카의 내용이 드라마로서 너무 격렬하고 거칠기 때문에 오페라로서 성공하지 못할것이라고 속여 포기하게 했다고 한다. 프란케티는 그의 자녀들에게 푸치니를 위해 토스카를 스스로 양보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푸치니가 나보다 시간이 더 많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토스카의 대본을 손에 넣게 된 푸치니는 뛰어난 무대 감각으로 대본을 다시 검토하고 친구인 주세페 지아코사(Giuseppe Giacosa)와 원래 대본을 쓴 일리카와 함께 대본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토스카의 원작자인 사르두도 대본을 다듬는데 일조를 하였다. 그는 완성된 대본을 보고 ‘원작보다 오페라 대본이 더 훌륭하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푸치니는 일리카에게 여러 장면을 수정하여 줄것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카바라도씨가 고문을 당할 때 아리아를 부르고 이어 4중창으로 발전하도록 되어 있으나 고문을 당하면서 아리아를 부르는 것은 어색하므로 싫어하였다. 마지막 장면에도 화가 카바라도씨의 죽음을 슬퍼하는 라틴어 찬송가가 등장하게 되어 있으나 카바라도씨가 자기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아리아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푸치니는 드라마틱한 센스를 최대로 살렸으며 토스카의 무대에서의 타이밍에 대하여도 세심한 고려를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고 있는 오페라 토스카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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