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이교도의 탑

정준극 2008. 11. 21. 19:42

이교도의 탑(하이덴튀르메)

 

슈테판성당의 역사는 바벤버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찍이 1140년에 비엔나시는 성슈테판에게 봉헌하는 교구교회를 건설했다. 1140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인종시대였고 중국에서는 남송시대였다. 비엔나에 슈테판성당을 처음 건설할 당시에는 성당의 위치가 비엔나 성곽밖에 있었다. 당시에는 현재 슈테판성당이 있는 곳이 비엔나의 센터가 아니었고 암 호프가 센터였다. 약1백년후인 1263년에 같은 장소에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바실리카(법정·교회 따위로 사용된 장방형의 회당)가 건설되었다. 오스트리아가 보헤미안 출신의 오토카르(Ottokar)2세 치하에 있을 때였다. 이때 세워진 바실리카의 자취는 아직도 남아있다. 정문의 양쪽에 서 있는 두개의 이교도의 탑(Heidentürme: Pagans Tower)이 바로 그것이다. 탑의 모양이 가톨릭 성당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이교도 사원의 탑과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어있다. 

 

이교도의 탑(하이덴튀르메)

 

1304년, 알브레헤트2세 대공 치하에서 새로운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로마 스타일의 바실리카처럼 생긴 성당을 짓기로 했다. 그리하여 세개의 성단소[聖壇所. 성당의 성상 안치소. 보통 동쪽 끝의 성가대(choir)와 성직자의 자리]로 구성된 고틱양식의 건물이 착수되었다. 유명한 남탑이 완성된 것은 1359년이었다. 1450년, 프레데릭(프리드리히)3세 황제 때에 북탑의 건설이 착수되었으나 완성을 보지는 못했다. 1945년, 2차 대전의 막바지에 성당 옆의 건물에 연합군의 포탄이 떨어져서 불이 났다. 불은 성당 지붕으로 번졌다. 슈테판성당은 뜻하지 아니하게 화재의 참사를 당할수 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재건에 박차를 가한 끝에 1952년 새로 봉헌할수 있게 되었다. 그후 보수공사가 쉬는 날 없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남탑의 오염된 때를 벗겨내는 작업이 장기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교도의 탑. 정면에 있는 두개의 타워가 마치 이교도 사원의 탑과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