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나이트하르트의 전설

정준극 2008. 11. 21. 19:46

성당 정문에서 외부로 조금 오른 쪽으로 돌아가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묘지같이 생긴 것을 철책으로 막아 놓은 것이 있다. 나이트하르트 푹스(Neidhard Fuchs)의 묘지로 생각되는 것이다. 나이트하르트 푹스는 오토 대제(Otto the Joyous) 시절에 궁중 어릿광대이며 시인이었다고 한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이 묘지는 12세기의 유명한 풍자음유시인인 로이엔탈 나이트하르트(Reuenthal Neidhard)의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어릿광대이며 시인이었던 푹스의 시에는 로이엔탈 스타일의 풍자적이며 사실적인 내용이 들어있으므로 로이엔탈과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로이엔탈 이전의 음유시인들은 다분히 낭만적인 시를 만들었으나 로이엔탈로부터 사실적이며 변하였고 심지어 에로틱하기까지 하여 낭만이라는 틀을 깨트렸다.

 

슈테판성당 남탑 방향의 외부에 있는 나이트하르트 푹스의 석관

 

이제 나이트하르트 푹스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사실적 스타일의 푹스는 지나치게 사실적인 나머지 농민들을 풍자하거나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시를 여러편 남겼다. 그래서 일반사람들은 그를 농민의 적이라고 까지 부르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당시 비엔나에서는 봄에 비엔나 숲에서 처음 핀 오랑캐꽃을 발견하면 그 꽃 위에 자기 모자를 덮어두고 궁전으로 달려가 대공에게 봄의 전령인 오랑캐꽃이 피었다고 알리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면 대공을 비롯한 귀족들이 악사들을 데리고 오랑캐꽃이 처음 발견된 곳으로 가서 꽃이 핀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봄이 왔음을 즐거워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으로 오랑캐꽃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적당한 보상이 있었다. 어느 해 초봄에 푹스가 비엔나 숲을 거닐다가 오랑캐꽃을 발견하고 급한 대로 자기 모자로 덮어 다른 사람이 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감추어 놓은후 대공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갔다. 얼마후 이곳을 지나가던 농민 두어명이 숲에 푹스의 모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농민들은 못된 푹스가 오랑캐꽃을 처음 발견하고 덮어 놓은 것인줄 알았다. 농민들은 모자 밑에 오랑캐꽃 대신 자기들이 생산한 다른 물건을 남겨 두고 가버렸다. 그 물건이 무엇이라고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냄새가 진동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공과 악사들을 데리고 온 푹스는 자랑스럽게 자기 모자를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오랑캐꽃은 구경도 할수 없고 대신 고약한 물건이 아직도 김을 모락모락 내며 자리잡고 있었다. 푹스가 당한 고난은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이트하르트 푹스가 비엔나 숲에서 봄을 알리는 오랑캐 꽃을 처음 발견하고 모자로 덮어 표시해 두는 삽화

 

 

 

'비엔나 워킹 투어 > 제1일 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엘리기우스 채플  (0) 2008.11.21
가수의 문(Singertor)  (0) 2008.11.21
빵과 옷감의 표준 측정, 그리고 05  (0) 2008.11.21
가시 빼는 남자  (0) 2008.11.21
이교도의 탑  (0) 2008.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