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아름다운 성수반의 성캐터린 채플

정준극 2008. 11. 21. 20:11

 

성캐터린채플의 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모차르트의 결혼과 아이들의 세례에 대한 기념 명판.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1782년 8월 4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츠라트와 콘스탄체 베버가 본 성당에서 본당신부의 주례로 결혼식(혼배성사)을 올렸다.  이들의 네번째 자녀인 요한네스와 여섯번째 자녀인 프란츠가 본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1791년 12월 5일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알려진 것은 그가 본 성당의 상임지휘자의 조수 자리에 응모했었다는 것이다. 12월 6일에는 본 성당의 크로이츠카펠레에서 그의 시신을 축복하는 진혼곡이 연주되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계기로 본 성당이 이 명판을 설치했다.  

 

성캐더린(St Catherine)채플은 남탑 아래의 큰 종의 문(Primglöckenlein Tor)으로 나가는 회랑에 있다. 성캐터린 채플의 뒤편에는 남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성캐터린에게 봉헌된 채플은 평상시에 철책문으로 닫혀 있어서 철책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수 있을 뿐이다. 다만, 철책문의 오른쪽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명판이 눈길을 끈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가 이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치루었으며 이들의 넷째와 여섯째 아이가 이 채플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설명이 적혀있는 명판이다. 이를 미루어보아 모차르트는 9년의 결혼기간 동안 6명의 자녀를 두었음을 알수 있다. 그중에서 두 아들만이 생존하여 한 아들은 정부의 공무원으로 이탈리아에서 근무했으며 다른 아들은 음악에 소질이 있어서 아버지의 고향 잘츠부르크에 가서 학교의 음악선생을 했었다고 한다. 채플안의 왼쪽 구석에는 아름다운 고틱 스타일의 성수반(聖水盤)이 있다. 1481년에 만든 것이다. 이 성수반의 뚜껑에는 이상한 역사가 간직되어있다.

 

성캐터린채플의 성수반과 제단

 

성수반의 뚜껑은 16세기부터 강론대의 종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강론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쳤던 종이었다. 아마 어릴 때 성슈테판 성당에 와서 강론을 들었던 나이 많은 사람들은 강론대의 벽에 걸려있는 넙적한 종을 보았을 것이다.  2차 대전의 전화로 인하여 종은 벽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비엔나대학교 역사학자 중의 한 사람이 전후 슈테판성당의 복구를 위해 작업을 하던중 바닥에서 이 넙적한 뚜껑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에 사용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결국 오랜 연구 끝에 성캐터린 채플 성수반의 뚜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원래부터 강론대의 종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성수반의 뚜껑으로 만든 것을 강론대의 종으로 사용했었음이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제자리를 찾아 다시 성수반 뚜껑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캐터린채플에는 이 성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펜단트(벽에 거는 장식)가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각 성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채플에는 그 성인을 추모하는 장식품을 만들어 걸기 마련이다. 성캐터린채플에는 결혼을 상징하는 마차바퀴, 그리고 칼을 장식하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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