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성십자가 채플: 성삼위일체 채플

정준극 2008. 11. 21. 20:16

모차르트 장례미사가 거행된 곳

오이겐 공자의 묘소와 수염이 자라는 주님의 십자가상


프린츠 오이겐 카펠레에 있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 배경에 있는 그림은 1683년 터키의 비엔나 침공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 오이겐 공자의 활약이 컸었다. 그리스도의 수염은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분명치는 않다. 다만, 해마다 수염이 자라고 있어서 매년 성목요일에 깎아 준다는 것이다.

 

성당의 중앙회랑을 통하여 다시 성당 정문쪽으로 걸어와서 이번에는 성당 왼편의 사연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잘보이지 않기 때문에 얼핏 지나칠수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채플이 성당에 들어가서 왼쪽 끝에 있다. 성십자가 채플 또는 삼위일체 채플(Tirna Chapel)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1791년 12월 6일 모차르트의 장례미사가 거행되었다. 모차르트는 그 전날인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슈테판성당에서의 미사에는 부인 콘스탄체가 참석했지만 콘스탄체는 심한 감기에 걸려 겨우 미사에만 참석하고 장크트 맑스 공동묘지까지는 가지 못했다고 한다. 십자가의 하단에 모차르트의 장례미사를 치루었다는 내용의 명판이 붙어 있다. 그런 사연을 가진 성십자가 채플은 실상 사보이의 오이겐공자(Prinz Eugen von Savoy)가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채플의 앞을 장식하고 있는 철책장식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마치 오이겐공자의 저택이었던 벨베데레궁전의 화려한 철책을 연상케 해 준다. 철책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주 평범한 석관(石棺)이 바닥 아래에 있는 것을 볼수 있다. 오이겐공자의 석관이다. 채플의 안쪽 한 구석에는 이 석관의 주인공인 오이겐공자를 설명하는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기념판이 있다. 미안하지만 기념판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철책 안으로 들어가야 볼수 있다.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 묘지. 프린츠 오이겐 카펠레에 있다.

 

오이겐공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오늘날까지도 대단히 전설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검소하고 평범한 석관과는 달리 오이겐공자의 장례식은 대단히 화려하고 장엄한 것이었다. 당시 합스부르크의 샤를르4세 황제는 오이겐공자를 기리기 위해 그의 자손들에게 영묘에 훌륭한 부조를 만들어 영원히 기억하도록 당부했다. 하지만 후손들이 신통치 않아서 황제가 지시한 기념부조는 거의 20년이 되어서야 설치될수 있었다. 오이겐공자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너나 재산을 상속할 직계 자녀가 없어서 손녀딸인 안나 빅토리아에게 무려 1백만 길더를 남겨주었다. 하지만 안나 빅토리아는 할아버지인 오이겐공자를 기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비엔나 시민들은 그런 안나 빅토리아에 대하여 사람이 그럴수가 있냐면서 대단한 유감을 표시하였다. 하지만 남의 말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 안나 빅토리아는 오이겐공자의 별세 이후 유산으로 받은 몇몇 궁전(슈타트팔레)들과 유명한 도서관의 장서들, 그리고 미술 수집품들을 모조리 팔아 챙겼다. 슈테판성당의 훌륭한 기념부조는 오이겐 공자의 장례식이 있은지 18년후, 오이겐공자의 조카의 부인이 만들어 봉헌한 것이다.

 

1974년 지하철 공사로 인하여 성당의 한쪽에 있는 오이겐공자의 석관이 있는 곳은 파헤쳐질수 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유골을 담은 항아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항아리의 뚜껑에는 1736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난 사보이의 공자 오이겐 프란치스 각하의 심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이겐공자의 심장 항아리가 슈테판성당에서 발견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오이겐공자의 심장은 고향인 이탈리아의 토리노(튜린)에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1706년 이탈리아의 빅토르 아마데우스왕은 오이겐공자가 토리노를 해방한 것을 기념하여 토리노에 성당을 건립했다. 나중에 그 성당은 사보이가문의 영묘로 이용되었으며 오이겐 공자의 심장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 야콥 반 슈펜(Jacob van Schuppen)작품. 세르비아 젠다의 전투.

 

그렇다면 슈테판성당에서 나온 오이겐공자의 심장은 어떻게 된 것인가? 장례식은 분명히 비엔나에서 치루어졌다. 그러므로 처음에 비엔나에 안치되었던 심장을 나중에 토리노로 이관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슈테판성당에서 나온 심장 항아리가 오이겐 공자의 것이라면 토리노에 있는 오이겐공자의 심장 항아리는 가짜일수 밖에 없다. 이런 가정도 생각할수 있다. 오이겐공자를 존경하는 비엔나 사람들이 18세기 말에 오이겐공자의 심장을 토리노로부터 비엔나로 몰래 옮겼다는 것이다. 당시 토리노는 프랑스군의 수중에 떨어질 운명이었다. 오이겐 공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혁혁한 전공이 있다. 그러므로 만일 토리노가 프랑스 군대에 점령당하게 되면 오이겐공자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은 프랑스가 오이겐공자에 대하여 위해를 가할수 있다는 생각을 할수 있다. 따라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비엔나와 협력하여 오이겐공자의 심장 항아리를 비엔나로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아직도 오이겐공자의 심장에 대한 설명은 완전하게 끝나지 않아 앞으로도 연구가치가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토리노에서 두번째 심장 항아리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슈테판성당에서 발견된 항아리 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만일 슈테판성당의 항아리에 오이겐공자의 진짜 심장이 들어 있다면 토리노에 보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만일 토리노에 보냈다면 언제 비엔나로 돌아 왔다는 것인가?

 

삼위일체 채플(프린츠 오이겐 카펠레)의 철책

 

오이겐 공자의 심장 항아리가 발견되었던 성십자 채플의 제단 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표현한 커다란 십자가상이 걸려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염은 진짜 사람의 머리털로 되어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그 수염이 해마다 자란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해마다 성금요일(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에는 슈테판성당의 성직자들이 가위를 들고 자란만큼의 수염을 조심스럽게 깎아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채플은 주님의 수염이 자라는 채플(Chapel of Our Lords Hairgrowth)로 알려져 있다. 이 채플은 통상 닫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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