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루돌프 대공의 암호문

정준극 2008. 11. 21. 20:18

루돌프 대공의 암호문

 

성당 기념품 상점(Dom Shop)에는 한때 여자전용의 출입문이 있었다. 그러다가 출입문을 막고 기념품 상점으로 만들었다. 상점으로 들어가보자. 슈테판성당을 방문한 기념으로 로자리 정도는 한 개 살만하다. 기념품 가게로 들어가기 전에 문의 위편을 보면 무슨 라틴어로 보이는 문장이 비교적 크게 적혀 있다. 마치 암호문과 같다. 무슨 내용인지는 성당이 건축된후 수백년 동안 누구도 알수 없었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왔다. 여기,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창사자인 루돌프대공이 묻혀 있노라(Hic est sepultus Dei gratia dux Rudolphs Fundator)라는 것이다. 암호 글자는 루돌프대공 자신이 고안한 것이라는 것이다. 암호글자들은 루돌프대공의 생존 당시 석공들의 숙사에 쓰여진 기호와 흡사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럼으로 루돌프대공이 암호글자를 만들고 슈테판성당에 직접 써 놓았다는 주장이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돌프대공은 이 벽의 안쪽에 매장되지 않았다. 얘기에 의하면 루돌프대공은 부인 카테리네와 함께 슈테판성당의 성소대 옆에있는 비너 노이 슈타트(Wiener Neustadt)제단 아래쪽에 마치 대관식을 하는 모습으로 화려한 석관에 안치되어 있다. 그러나 석관의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루돌프대공의 진짜 안식처는 다른 귀족들과 함께 슈테판성당의 지하 영묘에 있다.

 

루돌프대공이 고안한 암호 문구. 돔 샵(Dom Shop) 입구의 위에 있다.


루돌프 4세 대공과 대공비의 석관

루돌프대공은 오스트리아 역사에 있어서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9세에 군주로 즉위하여 26세 때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7년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슈테판성당의 고틱식 본당 회중석을 완성하였는가 하면 비엔나대학교를 건설하는등의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오스트리아의 공작(Dukes)은 독일의 선제후(Electors)와 같은 위치이므로 대공(Archduke)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문서로 만들어 놓은 사람도 루돌프였다. 이에 대하여 독일황제 샤를르4세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며 루돌프의 주장을 일축하고 대공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루돌프가 주장한 대공(Archduke)라는 호칭은 그로부터 거의 1백년이 지난 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을 석권하자 소급하여 인정 받았다. 루돌프대공은 자기의 초상화를 처음으로 그리게 한 합스부르크의 군주였다. 루돌프대공의 초상화는 슈테판플라츠 6번지의 돔박물관과 디외체산박물관(Diözesanmuseum)에 전시되어있다. 루돌프대공은 밀라노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시신은 비엔나로 운구되었다. 운구할 때에는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신을 소가죽으로 둘러싼후 자루처럼 꿰매었다고 한다.

 

File:Rudolf IV.jpg

루돌프 4세 대공의 초상화. 대성당박물관 소장.

 

'비엔나 워킹 투어 > 제1일 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장 안톤 필그림의 발자취  (0) 2008.11.21
성콜로만의 돌  (0) 2008.11.21
성다데오의 채플  (0) 2008.11.21
성십자가 채플: 성삼위일체 채플  (0) 2008.11.21
스테인드 글라스  (0) 2008.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