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독수리문과 품메린

정준극 2008. 11. 22. 16:28

 독수리문과 품메린


슈테판성당의 북탑이 있는 쪽의 독수리문.(Credit: Alfred Havlicek)
                                       

북탑의 바로 아래에 있는 문이 독수리문(Adlertor)이다. 독수리문의 옆의 담벽에는 이상하게 생긴 커다란 철제 손잡이 같은 것이 부착되어 있다. 원래는 독수리문의 중앙에 달려 있던 손잡이이다. 중세에는 교회에 지성소가 있어서 누구든지 교회에 피난처를 요구하면 대체로 받아 들였다. 독수리문을 지나서 나타나는 곳이 바로 이 같은 목적의 지성소 겸 피난처였고 철제 손잡이는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한 손잡이이다. 독일어로는 움렌크롤레(Umlenkrolle)라고 한다. 이 손잡이는 레오(Leo)라고도 부른다. 왜냐하면 레오폴드6세 황제가 이 지성소를 자기 신하들을 위한 피난처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레오폴드6세 황제가 멀리 출타중일 때 혹시 그의 신하중에서 무슨 명목이든지 고발당한 사람이 있으면 레오폴드6세 황제가 돌아올 때까지 슈테판성당의 이곳으로 피신할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오스트리아에서는 어린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때에 비록 술래가 되었다고 해도 미리 지정해 놓은 아무도 침입할수 없는 장소에 들어가 있으면 무사하다. 아이들은 이 장소에 들어가면서 레오!라고 소리친다.

 

독수리문(아들러토르)에 부착되어 있었던 레오 손잡이(움렌크롤레). 지금은 문 옆에 고정시켜 놓았다.

 

북탑은 높이가 60미터에 이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의 전망대까지 올라갈수 있다. 전망대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인 품메린(Die Pummerin: The Boomer: 큰 종이라는 의미)가 있다. 무게 20톤(정확하게는 20,130 kg). 서유럽 및 중부유럽에서는 세번째로 크다. 하지만 교회종탑에 설치된 자유타종 방식의 종으로서는 두번째로 큰 종이다. 1711년부터 설치되어 있었던 품메린은 1945년 4월 12일 러시아군의 포격의 여파로 파손되었다. 그것을 전후인 1951년에 오베레 외스터라이히주가 주곡 해방과 자유를 상징하기 위해 다시 제작하여 슈테판스돔에 기증한 것이다. 제작은 장크트 플로리안 바이 린츠(St Florin bei Linz)에서 수행되었다. 새로 만든 품메린은 '오스트리아의 소리'(Stimme Osterreichs)라는 별명을 붙였다. 원래의 품메린은 터키군이 퇴각할 때에 가져자기 못한 대포알을 녹여 만든 것으로 무게가 18,317 kg였다.  그리고 남탑에 설치되어 있었다. 슈테판성당의 품메린은 예전에 새벽에 기도시각을 알려 주었고 한때는 통행금지 시각도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재는 북탑에 설치되어 있다.


북탑의 문을 통하여도 성당 안으로 들어 갈수 있지만 평시에는 거의 닫혀 있다. 그러나 성당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행사요원들의 출입을 위해 문을 열어 놓는다. 북탑의 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에 유명한 치통의 그리스도 조각상이 높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수 있으며 왼쪽으로는 성바르바라 채플로 통하는 문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인 슈테판성당의 품메린. 무게 20톤. 유럽에서는 세번째로 크다. 1711년 제작했으며 터키군이 퇴각할 때에 가져자기 못한 대포알을 녹여 만들었다.  

18세기에 품메린 종을 제작한후 슈테판성당으로 옮기는 장면. 수많은 시민들이 품메린의 위용을 보기 위해 캐른트너 슈트라쎄에 모였다.

종전후 품메린을 다시 제작하여 슈테판스돔으로 운반하는 모습

전후 1957년 슈테판스돔 앞에 도착한 품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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