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1일 투어

북탑에 담긴 사연

정준극 2008. 11. 21. 20:36

성당을 돌아서 북탑 쪽으로 가보자. 북탑은 독수리탑이라고도 부른다. 아마 그 아래에 독수리 문이 있기 때문인듯 싶다. 북탑은 남탑의 장엄함에 비추어 규모면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원래 북탑은 남탑과 대칭하여 세우려 했다. 그러나 1511년 공사가 중단되었고 꼭대기에 르네상스 스타일의 장식만 추가된채 중단되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전설이 있다. 공사 인부중에 한스 푹스바움(Hans Fuchsbaum)이라는 젊은 석공이 있었다. 그는 대석공 프라하티츠(Prachatitz)의 딸인 마리아(Maria)를 사랑하고 있었다. 젊은이는 대석공에게 마리아와의 결혼을 승락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보잘것없는 인부석공에게 딸을 줄수 없다는 것이 대답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진지하게 간청하는 바람에 대석공은 한가지 조건을 내 걸었다. 마침 대석공은 남탑의 건설을 책임지고 있었고 청년 석공은 북탑의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다. 대석공은 청년에게 북탑을 남탑과 같은 시기에 완성한다면 결혼을 승락하겠다는 것이었다. 남탑은 이미 거의 완성된 입장이기 때문에 북탑을 같은 시기에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의에 빠진 청년 석공은 고민을 거듭하고만 있었다. 어느날 청년이 북탑의 비계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처음 보는 어떤 석공이 다가와서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도 수심이 가득하냐고 물어 보았다. 푹스바움 청년은 사정을 얘기하고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 할수 있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상한 사람은 청년에게 만일 당신이 공사 내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거나 또는 어떤 다른 성인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없다면 내가 북탑을 남탑과 같은 시기에 완성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청년 석공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판에 무조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로부터 북탑의 공사는 아주 척척 진행되었다. 이상한 사람은 악마였다.


브란트슈테테에서 바라본 슈테판스돔의 북탑 

슈테판성당의 북탑(오른쪽). 가운데 높은 탑은 남탑

 

어떤 청명한 날, 이날도 청년은 높은 비계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북탑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사랑하는 마리아가 성당 구내의 묘지를 거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너무나 반가운 김에 마리아~~라고 소리쳤다. 아뿔싸! 마리아는 성모의 이름이 아니던가? 청년은 약속을 어긴 것이 되었다. 청년이 마리아라는 이름을 부르자마자 악마가 순식간에 나타나 청년에게 약속을 어긴 것을 탓하며 청년을 밀쳐 떨어트렸다. 청년은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사람들이 몰려갔으나 시신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로부터 어느 누구도 북탑에서 작업을 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북탑은 현재처럼 작은 규모의 것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전설에 불과한 얘기이며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대석공 프라하티츠는 74년에 걸친 공사 끝에 1433년 남탑을 완성하였다. 13년후인 1446년, 프라하티츠가 56세 때에 그는 슈테판성당 건설의 석공책임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그의 설계에 의하여 북탑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프라하티츠는 그로부터 8년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에게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느니 하는 것은 모두 지어낸 얘기에 불과하다. 더구나 푹스바움은 프라하티츠의 위대한 후계자로서 성당의 아들러토르(독수리문)등 여러 부분을 완성한 당대의 거장이었다.

 

슈테판성당의 북쪽 지붕에는 전후 재건하여 봉헌한 해인 1950년이 오스트리아 문장 및 비엔나시 문장과 함께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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