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역사적 인물

헬덴플라츠의 오이겐 공자 기마상

정준극 2008. 12. 16. 19:20

비엔나 시내에는 여러 기념상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기마상은 모두 일곱 개에 이른다.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프란시스1세 기마상, 요셉플라츠에 있는 요셉2세 기마상, 호프부르크 앞의 헬덴플라츠(영웅광장)에 있는 샤를르 대공의 기마상과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 벨베데레 쪽의 러시아군인상 앞에 있는 슈봐르첸버그 장군 기마상, 알베르티나 미술관 앞에 있는 알브레헤트 장군 기마상, 그리고 슈투벤 링의 정부종합청사 앞에 있는 라데츠키 장군 기마상이다. 이들중 프란시스1세와 요셉2세는 황제였으므로 별도로 치면 나머지 다섯 개의 기마상은 모두 오스트리아를 위해 빛나는 전공을 쌓은 장군들이다. 시대별로 보면 오이겐공자가 가장 먼저이고 다음이 슈봐르첸버그 장군, 샤를르 대공, 알브레헤트 장군, 라데츠키 장군의 순서이다.



헬덴플라츠의 오이겐 공자 기마상 (Prinz Eugen von Savoy)

레오폴드1세-요셉1세-카를6세 시대의 위대한 장군

 

노이에 부르크 앞의 오이겐 공자 기마상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의 기마상은 노이에 부르크(Neue Burg: Neue Hofburg) 앞의 헬덴플라츠(영웅광장)에 우뚝 서 있다. 비엔나의 아름다운 바로크 궁전인 벨베데레(Belvedere)궁전은 오이겐 공자의 저택이었다. 오이겐 공자는 합스부르크 혈통의 인물은 아니지만 합스부르크 왕조의 역사에서 길이 기억되는 인물이다. 오이겐 공자는 레오폴드1세로부터 요셉1세를 거쳐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카를6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장군이다.


사보이(Savoy) 왕가 출신의 오이겐 공자(Prinz Eugen: 유진)는 1663년 10월 18일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1736년 4월 21일 향년 73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위대한 장군이며 정치가였다. 합스부르크의 역사에서 잊지 못할 역할을 했던 마자린(Mazarin) 추기경은 그의 삼촌이다. 마자린 추기경은 합스부르크의 레오폴드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될 당시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합스부르크 가문이 아닌 바바리아 왕가에서 만들려고 대음모를 꾸몄던 인물이다. 그러나 오이겐 공자는 합스부르크를 위해 헌신하였다. 오이겐은 20세의 청년으로서 프랑스 군대에 입대코자 하였다. 그러나 사보이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당시 사보이 공국은 스위스의 아래쪽, 프랑스의 동쪽 끝 지중해에 면한 작은 나라였다. 이에 오이겐은 그해에 신성로마제국군에 들어가 터키의 비엔나 공성에서 비엔나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이후 오이겐 공자는 1689년에 이르기까지 헝가리에서 오토만 터키의 세력을 물리치는 전투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으며 1693년까지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군대와 싸워 전공을 세웠다. 1697년 오이겐 공자는 신성로마제국군의 최고 사령관이 되어 터키와의 전쟁을 수행하였다. 오이겐 공자는 젠타(Zenta)에서 터키군을 완전히 물리쳤다. 1700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스페인왕위계승전쟁에 신성로마제국의 사령관으로서 크게 활약했으며 특히 1704년에는 영국의 말보로(Marlborough) 공작과 협동하여 바바리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돌이킬수 없는 참패를 안겨주었다. 오이겐 공자의 활약은 종횡무진이었다. 1706년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Torino)를 해방시켰으며 1708년에는 역시 말보로 공작과 함께 우덴나르드(Oudennaarde)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고 1709년에는 말플라케트(Malplaquet)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 기마상


오이겐 공자의 비엔나에 대한 업적중 하나는 비엔나 성벽을 완성한 것이다. 이로써 비엔나는 도시가 생긴 이래 외적을 방어할수 있는 완벽한 성벽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의 업적은 바로크 건물들을 남긴 것이다. 오이겐 공자는 레오폴드1세, 요셉1세, 샤를르6세(마리아 테fp지아의 아버지)에 걸쳐 황제를 보좌한 최측근 자문관이었다. 그 중에서 샤를르6세의 시대는 오스트리아 바로크의 황금시기라고 할 정도로 바로크 예술이 꽃을 피운 시대였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쇤브룬 궁전을 바로크 궁전으로 대폭 개축한 것은 대표적인 일이었다. 오이겐 공자도 바로크 예술에 대한 애호가였다. 그가 당대의 건축가인 피셔 폰 에어라흐(Fischer von Erlach)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벨베데레(Belvedere)궁전은 바로크 예술의 정수이다. 오늘날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갤러리(미술관)로 크게 사랑받고 있다. 오이겐 공자는 벨베데레에 동물원도 만들었으나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비엔나 1구의 힘멜포르트가쎄(Himmelpfortgasse)에 있는 오이겐 공자의 겨울 궁전도 바로크 건축의 정수이다. 오이겐 공자가 소유했던 또 다른 바로크 건축물은 마르흐펠트(Marchfeld)에 있는 슐로쓰호프(Schlosshof)이다. 오이겐 공자는 대단한 애서광(愛書狂)이었다. 그가 수집한 귀중본들은 비엔나 국립도서관 그랜드 홀의 오이게니아나(Eugeniana) 코너에 영구 보전되어 있다.

 

벨베데레 궁전


오이겐 공자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오이겐 공자는 1736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묘비는 슈테판성당의 성십자채플에 있다. 오이겐 공자의 기념상은 부다페스트와 토리노(Torino: Turin)에도 기념상이 있다. 하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오이겐 공자 기념상은 그를 신격화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오이겐 공자의 업적을 기리는 그림, 흉상, 기타 기록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