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역사적 인물

헬덴플라츠의 샤를르(칼) 대공 기마상

정준극 2008. 12. 16. 19:25

헬덴플라츠를 압도하는 샤를르(칼) 대공 기마상

아슈페른-에쓸링 전투에서 나폴레옹군을 격파


 

헬덴플라츠(영웅광장)의 샤를르 대공 기마상 (말의 뒤발꿈치만으로 전체 조형물을 지탱토록 한 기법은 놀랄만한 것이다). 안톤 페른코른의 작품.

 

호프부르크의 앞 헬덴플라츠(영웅광장)에서 폭스가르텐 쪽으로 우뚝 서 있는 기마상이 오스트리아의 영웅 샤를르(칼: 카를) 대공이다. 샤를르 대공의 공식 타이틀은 ‘오스트리아의 칼 대공’(Erzherzog Karl von Osterreich), 또는 ‘테센 공작’(Herzog von Teschen)이다. 원래의 풀 네임은 칼 루드비히 요한 요셉 로렌즈(Karl Ludwig Johann Joseph Lorenz)이다. 칼 대공은 오스트리아 육군 원수로서 레오폴드2세 황제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스페인의 마리아 루이사(Maria Luisa) 공주이다. 신성로마제국 레오폴드2세 황제의 큰 아들은 프란시스2세로서 나중에 오스트리아제국을 선포하고 프란츠1세가 된 사람이다. 칼은 선천적으로 간질병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군사령관으로서, 그리고 오스트리아 육군의 개혁자로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어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

 

아슈페른 전투에서의 칼(샤를르) 대공

                                                 

칼은 1771년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레오폴드가 아직 황제에 오르기 전이었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둘째 아들 칼의 비범함을 보고 어릴 때부터 비엔나에 보내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칼은 자녀가 없는 고모 마리 크리스틴(Marie Christine)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정치와 군사, 역사, 예술을 배웠다. 그후 칼은 오스트리아령의 네덜란드에 가서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칼은 어릴 때에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에서 살았고 소년시절에는 비엔나에서 살았으며 청년이 되어서는 네덜란드에서 살았다. 칼이 네덜란드에서 군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프랑스혁명으로 유럽이 혼란하던 때였다. 칼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후 벨기에 총독(Statthalter)으로 임명됨과 함께 육군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칼은 유럽의 저지대, 즉 네덜란드를 중심으로한 지역의 군사령관으로서 프랑스의 세력을 완충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1795년 칼은 라인지역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라인강을 따라 주둔한 전체 오스트리아 병력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칼은 라인 지역을 공략한 나폴레옹의 주르당(Jourdan)과 모로(Moreau) 장군의 군대를 오스테라흐(Osterach)와 슈톡카흐(Stockach) 전투에서 치밀한 작전으로 격퇴함으로서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중의 한사람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797년 칼은 이탈리아에 진군한 나폴레옹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향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군은 나폴레옹의 군대에 포위되었다. 오스트리아군은 중과부적이었다. 칼은 고도의 전략으로 오스트리아군을 안전하게 후퇴시켰다. 그 이후에도 칼은 여러번 나폴레옹 군대와 교전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나폴레옹군에게 있어서 칼(샤를르)은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칼 대공


칼은 건강이 악화되어 보헤미아로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모로(Moreau) 장군이 비엔나로 진격해오자 제국의 부름을 받아 전선으로 향하지 않을수 없었다. 칼은 호엔린덴 전투에서 모로의 군대를 격퇴코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이로써 칼은 프랑스와 슈타이르(Steyr)휴전조약을 맺어야 했다.1802년 신성로마제국의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회는 칼에게 오스트리아의 구원자(Savior)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기념상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칼은 이러한 결정을 사양하였다. 1806년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시스1세 황제는 칼을 오스트리아 제국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전쟁위원장의 직분을 맡겼다. 프란시스1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시스2세 황제였으나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의 존재를 위협하자 오스트리아를 제국으로 선포하고 프란시스1세라고 칭한 인물로서 칼 대공의 친형이다. 프란시스1세 황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막을 인물은 동생인 칼 대공밖에 없다고 믿었다. 칼은 오스트리아군에 대한 일대 개혁을 실시하여 18세기의 낡은 전투방법을 일신하고 프랑스군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었다. 칼이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군과 일생일대의 격전을 벌인 것은 비엔나 교외의 아슈페른-에쓸링(Aspern-Essling) 전투에서였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 전투에서 칼의 오스트리아군은 나폴레옹군에게 회복키 어려운 타격을 주었다. 나폴레옹군은 무려 5만 명이 넘는 전사자를 냈다. 물론 오스트리아군의 피해도 많았다. 오늘날 아슈페른에는 그때 전사한 오스트리아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사자 기념상이 있다. 칼은 아슈페른-에쓸링 전투이후 군대에서 완전히 은퇴하였다.

 

아슈페른 전투 희생자를 위한 추모기념물. 사자는 오스트리아제국을 의미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나폴레옹에 대항하여 제6차 연맹을 맺고 군대를 동원하였을 때 칼은 총사령관의 직위를 사양하였다. 연맹군의 총사령관은 보헤미아 출신의 슈봐르첸버그 공자가 맡게 되었다. 은퇴의 생활을 하고 있던 칼은 1822년 테센공국의 영주로 임명되었다. 이로부터 칼은 테센공작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칼은 결혼을 늦게 했다. 44세가 되던 해인 1815년 독일의 봐일부르크에서 나싸우-봐일부르크(Nassau-Weilburg)의 헨리에타 공주와 결혼하였다. 칼은 1847년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으로서 카푸친교회 지하실의 제국영묘(Kaisergruft)에 안치되었다. 1860년 그를 기념하여 헬덴플라츠(영웅광장)에 기마상을 세웠다. 이 기마상은 세계에서 유례가 볼수 없을 정도로 기막힌 역학공법을 사용하여 제작된 것이다. 말의 뒤 발꿈치로 육중한 전체 조형물을 지탱토록 만든 것이다. 칼의 기마상을 제작한 사람은 당대의 조각가 페른코른(Fernkorn)이었다. 그는 영웅광장 건너편의 오이겐공자의 기마상도 똑 같은 공법으로 제작하려 했지만 도저히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만 거듭했다. 그리하여 어쩔수 없이 말의 두 뒷발에 꼬리를 합하여 전체 기마상을 지탱토록 했다. 오이겐공자의 기마상은 공학적으로는 대단히 우수한 작품이지만 말의 뒤 발목으로 전체 작품을 지탱하게 한 샤를르대공의 기마상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것이다. 페른코른은 오이겐 공자 기마상을 샤를르대공의 기마상을 본따서 만들지 못한 죄책감으로 나중에 정신이상에 걸렸다. 과연 그만한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헬덴플라츠와 샤를르 대공 기마상

                      

나폴레옹은 전술의 귀재라고 한다. 그런 나폴레옹을 격퇴한 인물중의 하나가 칼 대공이다. 칼 대공을 영국의 웰링턴과 비교하지만 실은 웰링턴보다 훨씬 훌륭한 장군이다. 웰링턴은 나폴레옹과의 워털루라는 단 한차례 전투로 승리하여 영웅이 되었지만 칼 대공은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여러번 승리하여 타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웰링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널리 알져지지 못한 입장이다. 하지만 나폴레옹 자신은 칼 대공은 가장 위대한 적수로 간주하였다. 이른바 나폴레옹의 판테온에 포함되는 인물은 황제인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휘하의 루이 니콜라스 다부(Louis Nicolas Davout)장군과 안드레 마쎄나(Andre Massena)장군, 그리고 상대진영의 칼 대공과 슈봐르첸버그 공자, 러시아의 미하일 쿠투조브(Mikhail Kutuzov) 장군, 영국의 웰링턴 공작이다.


칼 대공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그중에서 큰 아들인 알베르트 대공은 칼 대공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제국을 위해 헌신한 장군이 되었다. 알베르트 대공의 기마상은 호프부르크 궁전의 끝머리인 알베르티나(현재 미술관)에 서 있다. 비엔나 시내에 있는 일곱 개의 기마상 중에서 세 개가 칼 대공, 칼 대공의 아들 알베르트 대공, 그리로 칼 대공의 형 프란시스1세 황제의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칼 대공 기마상. 헬덴플라츠 디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