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의 위용
성남에 10년 이상 살면서 그동안 성남 인근에 있는 남한산성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물론 남한산성에는 옛날 한 40년전 쯤에 꼭 한번 갔던 일이 있다. 남한산성이 성남 시청 있는 곳에서 버스를 내리면 지척인줄 알고 무작정 찾아갔다가 수어장대까지 올라가는 길에 '도대체 내가 왜 왔을까?'라며 여러번 후회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가까스로 수어장대까지 갔다가 밤늦게 어두워서 성남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지하철까지 생겼다.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리거나 산성역에서 내리면 된다. 남한산성입구역이라고 해서 금방 남한산성 입구인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도대체 남한산성은 상당히 넓은 지역이므로 행선지가 어디냐에 따라 접근하는 길도 달라진다. 보통은 남한산성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산성리로 가서 행선지를 정하고 가고 싶은 데로 간다. 산성리로 가려면 지하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한다. 마을버스 9번은 구절양장의 산성 길을 구비구비 행한다. 위험한 길이지만 경치는 그럴듯하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더 위험하겠지만 경치는 더할수 없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을버스 앞 유리창에는 눈 속과 구름 속을 운행한다는 매력적인 광고 표지까지 부착되어 있다. 남한산성에 가서는 수어장대(守禦將臺)를 보고 와야 그래도 남한산성에 갔다 왔다는 얘기를 할수 있다. 남문안 로터리에서 서쪽으로는 수어장대이며 북쪽으로는 숭열전, 동쪽으로는 현절사와 망월사, 남쪽으로는 지화문(남문)과 남장대 터를 볼수 있다.
수어장대 주변 성곽의 깃발
예전에 남한산성에 갔을 때에는 남문에서 입장권을 산후 무한정 걸어 올라가서 수어장대를 보았다. 수어장대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분지에 마을이 있었다. 산성 안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이런 구석에도 사람들이 사는구나! 마을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을에는 술집을 겸한 식당들이 더러 있어서 멀리서 일부러 토종닭 백숙을 먹으러 온다고 했다. 현재의 산성리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불국사 앞마을을 보는 듯 했다. 절이나 궁궐처럼 생긴 멋있는 기와집들이 수두룩하게 들어서 있다. 거의 모두 식당이다. 산성리가 아니라 식당리이다. 그런 중에도 남한산성역사관이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역사를 알고 현장을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산성리에서 뜻하지 않게 발견한 것은 천주교 순교성지였다. 조선 후기에 이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순교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고 기도처가 마련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순교지 한쪽에 작은 초가집에 있다. 초가집의 한쪽은 방이며 나머지는 소외양간이다. 소외양간에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장식이 되어 있다. 옛날 조선시대의 젊은 아낙네 모습과 농사꾼처럼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 있다.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태어나셨으므로 굳이 그 장면을 한국화 한다면 고조선이나 신라시대의 복장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마을 중심지역에는 커다란 교회까지 있다. 남한산성교회인데 성결교회이다. 아주 그럴듯하게 잘 지었다. ‘아니, 이 작은 마을에 저런 큰 교회가 있다니! 교인들이 그만큼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산성리는 흥미 있는 곳이다. 마을의 한 쪽에는 해공 신익희 선생의 기념상이 우뚝 서 있다. 신익희 선생은 경기도 광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또 수어장대로 올라가는 샛길 방향에는 만해 한용운 기념관이 있다. ‘님의 침묵’의 원본 원고도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만해 선생은 산성리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일까?
암문에 걸려 있는 막걸리집 광고
다시한번 강조하거니와 마을에 있는 건물들은 거의 모두가 식당이다. 식당천국이다. 별별 음식점들이 다 모여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몰려와서 먹는다는 얘기이며 그만큼 장사가 된다는 얘기이다. 그중에 로타리에 있는 어떤 식당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백성들은 먹어야 한다’는 글이다. 그나저나 집 한 채를 그럴듯하게 짓고 식당을 경영하려면 엔간한 자본가지고는 어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산성리에 와서 보면 ‘야, 돈 많은 사람들 참 많네!’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고대광실과도 같은 식당들을 지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관광지이니만치 좀 더 문화적인 시설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를 들면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체험장이다. 마을정보센터에 도자기체험장이라는 간판이 있기는 한데 과연 얼마나 활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수어장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다. 커다란 나무마다 이건 무슨 나무이고 저건 무슨 나무라는 설명서가 붙어 있는 것도 관찮은 모습이었다. 곳곳에 화장실이 있어서 남한산성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음도 반가운 일이다. 화장실은 청결이 제일이다. 산 아래의 산성리에서 화장실에 들렀었다. 들어서자마자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와 기분이 썩 좋았다. 높은 지대의 화장실도 청결하고 아늑하게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리 높은 지역이라고해도 식당들이 있었다. 수어장대에서 가까운 성벽의 어떤 암문에 무슨 안내문 같은 종이가 붙어 있어서 ‘암문에 대한 설명문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암문을 지나면 막걸리를 파는 집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귀중한 문화재에 막걸리 광고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저만치 골짜기에서는 남자들 대여섯 명이 둘러 앉아 화투를 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술잔들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산불이라도 내면 어쩌려고 낙엽이 쌓인 저런 곳에서 놀고 있다는 말인가? 쓰레기는 그냥 버리고 가겠지?
수어장대의 소나무. 담을 뚫고 자랐다?
수어장대에 올라가서 ‘과연, 잘 왔다’라는 생각을 했다. 사방이 훤히 잘 보이는 곳이었다. 저 멀리 서울까지 잘 보였다. 시원했다. 수어장대에서는 두가지가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현판을 모신 전각이고 다른 하나는 이승만대통령이 손수 기념식수한 나무이다. 이승만대통령은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높은 곳 까지 걸어와서(자동차나 헬리콥터로 올수 없는 곳이므로) 저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며 통일의 염원으로 기념식수를 하셨을 것이다. ‘아, 그때 그놈의 중공군들만 밀려오지 않았더라면 압록강에 꽂은 태극기가 지금도 휘날리고 있을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무망루라는 현판은 영조가 쓴 것이다. 북벌을 꾀하다가 세상을 떠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무망루라는 현판을 썼다고 한다. 무망루라는 현판은 원래 수어장대의 내부 편액으로 걸어 놓았던 것이지만 지금은 수어장대 바로 옆에 작은 비각집 같은 짓고 그 안에 걸어 놓았다. 바로 그 옆에 ‘리대통령각하 행차 기념식수’라는 길죽한 돌비석이 있고 비석의 옆에는 전나무 한그루가 청청하게 서 있다. 돌비석에 ‘각하’라는 단어를 쓴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뿐 아니라 ‘행차’란 또 무엇인가? 원님 행차인가? 그냥 ‘이승만대통령 기념식수’라고 하면 될 것이지 공연히 ‘각하’니 ‘행차’니 하는 단어를 써놓아서 쓴 웃음이 나오게 했다.
산성리 마을. 자꾸 식당만 늘어난다.
수어장대 앞의 한쪽 구석 담벼락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바위 한 가운데에는 ‘守禦將臺’라는 글이 마치 도장처럼 네모 안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장’자가 희미해 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이 바위에는 별로 신통할 것도 없지만 그나마 전설이 깃들여 있다.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에 동쪽이던가 하는 부분은 이회(李晦)라는 사람이 공사책임을 맡았다. 이회라는 사람은 기간 내에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여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바로 수어장대 앞의 마당에서 처형키로 했다. 그때 웬 매 한 마리가 날아와 한쪽 구석에 있는 큰바위 위에 앉아 참수형을 당할 이회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날아갔다는 것이다. 매가 앉았던 바위 위의 자리에는 매의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뿐이다. 매가 날아와서 사형집행을 중지토록 했다든지 또는 ‘어디들 두고 보자!’라고 했다든지 하면 그나마 흥미가 있을 터인데 그냥 참수형을 당할 이회를 바라보다가 가버렸다는 것이다. 누군 바라보지 않았나?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상
또 하나 수어장대에서 눈여겨 볼것이 있다. 담을 뚫고 자란 소나무이다. 소나무가 먼저냐 담이 먼저냐를 놓고 얘기를 나누는 사람을 보았다. 글쎄, 담이 먼저겠지! 소나무야 주변에 지천인데! 과연 그까짓 작은 소나무의 가지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담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가지가 자라 나오도록 배려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소나무 가지를 보호하기 위해 담에 구멍을 뚫었다는 생각이 자꾸 난다.
기왕에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김에 국가사적 57호인 남한산성의 유래에 대하여도 잠시 설명코자 한다. 남한산성은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성이었다. 신라 문무왕 시절에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성으로 만들었다. 당시의 이름은 주장성(晝長城) 또는 일장성(日長城)이었다. 해가 잘 들어서 그런 이름을 붙인것 같다. 성의 둘레는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나 성의 중심부는 낮고 평평하여 수비가 쉽고 많은 군사들을 주둔하기에 십상이었다. 아마 산성의 조건으로서 이만큼 좋은 지역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다가 조선의 광해군 때에 후금의 침입에 대비코자 제대로의 산성을 구축토록 했다. 이름도 남한산성이라고 붙였다. 축성에는 일반인들도 동원되었으나 특히 팔도 승군들이 동원되어 열심히 일했다. 팔도에서 승군들이 축성에 참여하였다. 성내에는 전부터 옥정사와 망월사가 있었으나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위해 팔도에서 승군들이 집합되자 개원사, 장경사 등 7개의 사찰을 더 지어 승군들의 숙소 겸 수련도장으로 삼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시기에 일본은 남한산성의 절들이 자주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여 대부분의 절들을 군대를 동원하여 폭파해 버렸다. 그리하여 현재는 성내에 현절사, 망월사, 장경사, 개원사, 국청사만 남아 있는데 모두 근년에 이르러 복원한 것이다. 가장 규모가 큰 망월사는 1990년 이후에 복원되었다. 그건 그렇고 산성은 광해군 시대에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반정을 거쳐 인조 4년에 완성되었다. 1626년의 일이다. 그후 북벌을 주장한 효종을 거쳐 숙종조에 이르러 다시한번 대대적인 보완공사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보완작업은 조선말의 순조때까지 계속되었다. 남한산성의 중심인 수어장대는 인조 때에 단층으로 축조한 것을 영조 때에 2층으로 높이고 외부 편액을 수어장대, 내부 편액을 무망루라고 하였다.
잊지말자.
그러면 산성의 규모는 어떠했는가? 성벽의 길이는 모두 약 12km에 이르며 성벽의 높이는 낮은 곳은 3m, 높은 곳은 7.5m에 이른다. 그만하면 적병들을 막아내는데 문제가 없다. 여기에 4장대, 4문, 5옹성, 16암문, 2돈대를 마련했고 유사시에 임금이 머무를 행궁도 마련되었다. 행궁에는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종각등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4장대중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남아 있으며 4문은 그나마 보존되어 있다. 4문은 서문인 우익문, 동문인 좌익문, 남문인 지화문(至和門), 북문인 전승문을 말한다. 산성내의 건물 중에서 사적으로 지정된 것은 수어장대, 청량당, 숭열전(崇烈殿), 현절사, 침괘정, 연무관(演武館), 지수당,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행궁(行宮) 등이다. 특히 행궁에는 병자호란 때에 인조가 거의 두달 동안 머물렀으며 그후에는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능행길에 숙소로 이용하였다. 숭열전은 백제 시조인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우리나라에서 남한산성만큼 역사적, 문화재적 기념장소가 집합되어 있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들 시간이 있으면 한 번 쯤은 찾아가 보기를 적극 권면하는 바이다.
아! 수어장대! 저멀리 북한산까지 보인다. 이런 산꼭대기에 저런 웅장한 건물을 짓다니! 고생들 많았겠다. 단청도 새로 입혀서 멋이 있다.
이승만대통령 기념식수 기념비. 그 나무가 벌써 이렇게 컸다.
매바위. 매가 어디 앉았었다는 것인지?
남문인 지화문. 웅장하다. 노래부를때 반죽넣는 지화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
지수당. 원래 연못이 세개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아 있다. 귀족들의 휴게실.
남한산성 역사관. 훌륭한 건물이다. 산성리 노인들의 사랑방.
천주교 순교자 현양비. 순교당한 인물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그런데 현양이란 무슨 뜻?
천주교순교성지의 성모 마리아상. 지나가던 어떤 어린이가 '이거 부처님이야?'라고 물었다. '에끼!'
앗! 소외양간에서 아기 예수 탄생. 한복입은 성모 마리아와 상투틀고 몽둥이를 짚은 요셉. 그
런데 몽둥이는 무슨 용도? 소치는 사람이 저런 몽둥이를 들고 다닐리는 만무한데...
천주교 순교지. 순례자들이 많다고 한다. 아래층의 넓은 온돌방 같은 방이 기도처이다.
한옥 성당이 멋있다.
연무관. 練武館인줄 알았더니 演武館이었다. 지붕에는 잡초들이 자라고..쯧쯧!
웬 비석들? 공적비들을 정렬해 놓았나보다. 설명판이라도 설치해 놓았으면..
남한산성교회. 이런 특이한 한옥교회는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듯. 종은 없지만 종각이 운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