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와 여인들

'마농'과 에로티시즘

정준극 2009. 2. 22. 21:25

마농과 에로티시즘


사람들은 1880년대에 유럽에 등장한 악녀(Femme fatale)로서 우선 마농(Manon)을 꼽는다.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은 1884년에 등장했고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1893년에 등장했다. 마농이란 여인은 그보다 훨씬 전인 1731·년 아베 프레보(Abbe Prevost: 원명 안투안 프랑수아 프레보)가 창조한 인물이다. 하류층 출신의 마농은 뛰어난 미모로서 남성들을 현혹하여 사회적인 신분상승을 도모한 여인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롤라 몬테(Lola Montes)와 라 모가도르(la Mogador)의 경우와 비슷하다. 마스네 자신은 부인 니농(Ninon)과 함께 행복하고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였다. 마스네도 한때 바람을 피웠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부인에게 성실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얘기이다. 문제는 일반대중의 취향이다. 대중들은 성실한 부부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대중들은 이브,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 사포(Sappho: 기원전 600년경의 그리스의 여류시인)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그것이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심리인 것이다.

 

 190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마농 역의 매기 타이트


과거의 예로 보면, 사람들은 창녀와 성직자, 방탕과 죄의식, 정욕과 양심 중에서 어떤 것이 보다 사회적인 수용성이 있는지에 대하여 논쟁을 벌여왔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의 기본이 도덕적 가치관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은 어차피 탐욕스럽고 방탕한 심성이 있으므로 어쩔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논쟁은 연극이나 오페라의 주제로서 적당한 것이었다. 오페라 마농은 대표적인 것이었다. 육욕에 빠진 방탕한 젊은 여인이 진지하고 순수한 젊은 남자를 어떻게 슬픔으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마농’의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바람기가 있으면서도 순진한 젊은 마농이 수녀가 되려고 한다. 마농은 젊은이를 유혹하여 사치한 생활을 한다. 마농은 더 돈이 많은 늙은 남자가 나타나자 그를 따라간다. 얼마후에는 늙은 남자가 싫어져서 다시 젊은 남자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대부분 스토리가 그렇듯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마스네는 프랑스의 스토리에 독일적인 음악(이 경우 바그너)을 세팅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농의 에로티시즘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바그너적인 요소를 가미했을 뿐이었다. 당시로서 음악에 있어서의 에로티시즘은 새로운 시도였다. 새롭기도 했지만 흥분되는 것이었다. 마치 아르 누보 그림이나 조각에서와 같은 시도였다. 그것은 1880년대를 풍미한 사조였다.


이러한 1880년대의 새로운 사조는 1990년대에까지 연장되었다. 이른바 ‘환락의 90년대’(Gay Nineties)였다. 영국에서는 빅토리아풍이 사라지고 대신 에드워드풍이 깃발을 휘날리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드레퓌스(Freyfus)사건으로 사회가 들썩이게 되었고 가톨릭교회는 한걸음 물러나 있었다. 세기가 바뀌면서 상류사회에서는 새로운 가치관의 전도가 대유행이었다. 유행에 앞선 사람이 되려면 여성적인 남자가 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양성(兩性)의 인물이 되어야 했다. 사디스트(색정광)가 되거나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했고 여성간 동성연애자가 되거나 성욕 도착자가 되어야 했다. 파리는 물랭 루즈의 전성기가 되었다.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ere)의 전성기였으며 미스틴게트(Mistinguette)와 라 굴루(La Goulue), 제인 아브릴(Jane Avril),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아나톨 프랑스, 클로드 드빗시, 코난 도일경의 전성시기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여성간의 동성연애(레스비안)는 대단히 유행했다. 아방 갸르드 예술가를 자처하는 레스비안들은 미국에서 온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가 마담역할을 했던 아마존 살롱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럴 때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등장하였다. 프로이트는 이 모든 섹스의 혼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본성은 섹스이므로 알아서들 하라는 설명이었다.   

 

마농 레스코의 저자인 아베 프레보(안투안 프랑수아 프레보)(Antoine Francois Prevost: 1697-1763)


어떤 사람들은 몇몇 극단적인 여자 때문에 ‘남자라는 것’이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고 믿었다. 당시 여성들은 심지어 투표권까지 요구하였다. 실로 여성들은 전통적인 어머니, 수녀, 정부, 아내의 이미지에서 위치변경을 하였다. 여성들은 성에 대하여도 자유롭게 표현할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성의 환희를 마음껏 느낄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직까지 그런 생각들을 공공연하게 내보일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장소에서 여성들의 새로운 생각을 표현할수 있는가? 무대이다. 오페라 무대가 가장 적격이었다. 오페라 성악가들과 배우들은 무대에서 그동안 여성이라고하여 억제 받았던 감정을 얼마든지 표현할수 있었으며 폭풍과 같은 열정을 표현할수도 있었다. 물론, 무대에서만 한정된 것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마농은 시대가 창조해낸 새로운 여성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