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와 여인들

'투란도트'와 도리아

정준극 2009. 2. 22. 21:27

투란도트와 도리아


푸치니의 부인인 엘비라가 질투의 화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09년, 엘비라는 푸치니가 어린 하녀인 도리아 만프레디와 관계를 맺었다고 하며 남편인 푸치니를 비난하였다. 엘비라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주장을 하며 푸치니의 입장을 대단히 난처하게 만들었다. 몇 달에 걸쳐 그렇게 했기 때문에 결국 온 이탈리아가 그런 내용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 한 쪽은 푸치니 선생이 그럴 리가 없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충분히 그럴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사자인 도리아는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어 푸치니 집에서의 하녀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엘비라가 그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엘비라는 계속 도리아를 비난하였다. 결국 도리아는 자살로서 자기의 결백을 입증코자 했다. 도리아가 죽은후 의사가 도리아의 시신을 자세히 검사한 결과, 도리아는 처녀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도리아의 가족들은 엘비라를 무고죄로 법정에 고소하였다. 엘비라는 법원에서 5개월 구속의 형을 받았다. 푸치니는 엘비라와 헤어지려고까지 결심 했다. 그러나 마음 약한 푸치니는 엘비라와 이혼하지 못하고 도리아의 가족에게 위자료를 주고 아내를 대신하여 용서를 빌었다. 

 

 

 

1904년의 푸치니. 왼쪽이 엘비라이며 그 다음이 도리아이다. 오른쪽의 엄마와 아기는 엘비라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그 딸의 딸.


이런 고약한 사건이 있은지 몇 년후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작곡을 시작하였으나 마지막 듀엣 파트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투란도트는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지 2년후인 1926년 4월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투란도트의 스토리는 원래 페르시아(이란)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으나 푸치니는 무대를 베이징으로 옮겼다. 시간을 초월하는 범세계적인 무대로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푸치니가 오늘날에 살았었고 투란도트를 작곡했다면 아마 무대를 이락으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공포정치가 짓누르는 곳으로는 사담 후세인의 이락만큼 적당한 장소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란도트 공주는 자기의 선조(할머니?)가 당한 성폭력에 대하여 모든 남성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투란도트는 자기에게 프로포즈하는 사람들에게 세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만일 맞추지 못하면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았다. 베이징의 거리는 피로 물들었고 투란도트는 얼음처럼 냉혹한 공주로서 이름을 높이게 되었다. 투란도트는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아울러 희대의 잔혹한 복수자였다.


오페라는 마지막 구혼자인 페르시아의 왕자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참수를 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나타난 칼라프! 타타르의 왕자인 것을 숨기며 등장한다. 투란도트의 미모에 정신을 잃은 칼라프는 감연히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마침 거지 차림으로 나타난 칼라프의 아버지와 젊은 노예 류(Liu)는 칼라프에게 제발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수수께끼에 도전하지 말라고 간청한다. 류는 칼라프를 사랑하지만 칼라프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마침내 칼라프는 세가지 수수께끼를 성공적으로 대답한다. 희망, 피, 그리고 투란도트가 해답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칼라프가 제정신으로 그랬는지 또는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하여튼 자기도 투란도트에게 수수께끼를 하나 내고 만일 맞추면 자기의 목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그 수수께끼라는 것은 자기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맞추라는 것이었다. 투란도트는 베이징의 모든 백성들에게 새로 등장한 청년(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하도록 엄명한다. 사실 베이징 백성들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멋들어진 칼라프의 아리아 Nessum Dorma를 듣게 된다면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병사들이 칼라프의 아버지와 류를 체포하여 온다. 얼마전에 칼라프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이름을 알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병사들이 칼라프의 아버지를 고문하려하자 류가 용감하게 뛰어나와 대신 죽음도 불사한다. 그러면서도 칼라프의 이름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투란도트는 류의 그와 같은 용기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미지의 청년의 이름을 알아내야 했다. 체면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투란도트는 칼라프의 이름을 알기 위해 병사들에게 류를 고문토록 명령한다. 류는 사랑하는 칼라프의 이름을 말하는 대신 옆에 있던 어떤 병사의 단검을 빼앗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면서 이름을 말하지 않는 용기는 ‘사랑’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 광경을 본 칼라프가 투란도트를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다. 칼라프도 좀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이 아닌지 모르겠다. 키스가 그렇게도 중요했었나? 아무튼 투란도트는 그제야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공포의 시대는 끝난다. 


어째서 칼라프는 자기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류를 버리고 어름같이 차가운 투란도트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 스토리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인가? 칼라프? 류? 그렇지 않으면 투란도트? 원작에 따르면 칼라프의 사랑이 투란도트의 차가운 마음을 녹이고 얼음이 불이되고 그렇게 하여 삶이 죽음을 이긴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투란도트가 아니라 류야 말로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수 없다. 마담 버터플라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죽음도 불사하는 용감한 여인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푸치니는 오페라 투란도트에서도 투란도트보다도 오히려 류에게 더 훌륭한 아리아를 선사하고 있음은 그런 연유 때문인 것 같다. 푸치니로서는 아무 죄도 없이 목숨을 버린 도리아에 대하여 높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것 같다. 그렇다면 오페라 투란도트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도리아일지도 모른다. 오페라에서는 투란도트 자신도 희생자라고 할수 있으나 사실상 투란도트는 냉혹한 인물이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가 엘비라와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 질투의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