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강화-인천

은암자연사박물관(Eunam Natural History Museum)

정준극 2009. 3. 12. 10:19

은암자연사박물관(Eunam Natural History Museum)

 

원래 건물 옥상에 '강화은암자연사박물관'이라는 글자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연사박물관'이라는 글자만 남아있다. 이 박물관의 현주소를 보는듯 해서 마음이 아팠다.

 

30여년전인 1975년,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곳을 갔었다. 반년동안 시카고에서 지냈다. 기왕에 어렵게 간 미국이었으므로 시간만 있으면 많이 보기 위해 그저 많이 돌아다녔다. 가장 자주 갔었던 곳은 시카고 시내의 자연사박물관(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이었다. 시카고의 자연사박물관은 우선 건물의 규모가 대단하다. 마치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마주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공룡이었다. 공룡의 뼈를 발굴하여 실제대로 조립해 놓은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큰 동물이 살았었다니! 그러 놀라울 뿐이었다. 광물전시실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원석도 있고 번쩍번쩍 빛나는 진짜 금광석도 있었다. 그 다이아몬드 원석 덩어리의 반의 반 조각만 있어도 팔자를 고칠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동물들의 박제품. 정말 별별 동물들이 다 있었다. 아하! 이런 전시품들을 통해서 자연의 역사와 섭리를 배우는 것이구나! 정말 흥미 있는 곳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Natural History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자연적인 역사?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시카고자연사박물관을 서너차례 드나든 다음에야 자연사(自然史)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었다.

 

시카고자연사박물관의 로비

 

비엔나의 자연사박물관(Naturhistorisches Museum Wien)은 세계의 자연사박물관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우선 박물관 건물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하다. 그리고 말할수 없이 훌륭한 전시품들. 그야말로 대단하다. 세계에서 제일 큰 게(蟹)도 있다. 포유류와 곤충들의 표본이 가장 많다. 비엔나의 자연사박물관은 세계의 보고이다. 대개 나라마다 자연사박물관이 있기 마련이다. 자연이라는 엄청난 존재가 보여주는 교훈과 섭리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수준은 한 나라의 문화, 과학, 예술의 척도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국가가 지원하고 관장한다. 많은 나라들이 자연사적으로 중요한 유물들을 훌륭하게 간수하고 정확하게 연구하는 일에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자연사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의 기구가 있기나 한가? 불행하게도 없다. 어, 그런데 한 곳이 있다. 강화도에 있는 은암자연사박물관이다. 그리고 대학교에도 자연사라는 이름의 전시장이 한두 군데 있다. 우리나라엔 국립중앙과학관(대전소재)이란 것이 있다. 정부에서 과학사(科學史) 전문가가 아닌 일반 공무원에게 돌아가면서 맡겨 운영하는 있는 과학관이다. 자연사에 대한 일부 전시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립중앙과학관은 자연사박물관이 아니다. 창경원 옆에 붙어 있는 과학관도 마찬가지이다. 과천 대공원 앞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건설한 과학관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의 대도시마다 비슷하나마 과학관(科學館)이 있지만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사박물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 강화도에 있는 은암자연사박물관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속상한 박물관이다.

 

비엔나 자연사박물관의 위용 

                  

은암자연사박물관은 금속공예가인 이종옥이라는 분이 지난 50여년간 사재를 털어 세계를 돌며 수집한 자연사적 자료들을 전시한 곳이다. 희귀자료가 20만점이나 된다고 하며 그중에서 상당부분을 4개의 전시실에 그야말로 정성스럽게 정리해 놓았다. 은암이라는 말은 아마 이종옥 선생의 아호인듯 싶다. 마침 강화에 간 김에 말로만 듣던 은암자연미술관을 우정 찾아가 보았다. 통진에서 강화대교를 건너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쪽으로 줄곧 가다가 안내표지판을 따라 송해면 방향으로 꺾어 들어가면 한적한 야산 중턱에 은암자연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강화도의 서북단이다. 은암자연사박물관의 뒤쪽으로는 화문석문화관이 있다. 자연사박물관에 온 김에 화문석 공예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입장료는 어른이 3천원이다. 우선 넓은 마당에 별별 공룡들의 모형이 줄줄이 서 있어서 마치 쥬라기공원에라도 온듯한 느낌을 준다.

진짜 대단한 것은 전시실이다. 전시실은 모두 4개이다. 2층짜리 건물인데 1층에 두 개 전시실이 있고 2층에 두개의 전시실이 있다. 각 전시실마다 화석, 패류, 광물, 곤충 등이 중점적으로 전시되어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각종 새들의 박제품, 나비나 다른 곤충들의 표본 따위는 어느 방에서나 자주 볼수 있는 것이었다. 20만점중에서 절반이 어패류라고 한다. 어떤 전시품들이 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은암자연사박물관이 서울 한복판에 있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관람객들로 성황을 이루었을 터인데 강화 송해면의 시골구석에 있으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너무 외진 곳에 있다. 교통이 만만치 않게 불편하다. 한참 만에 보이는 군내버스가 있기는 있지만 그걸 이용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자가용으로 가야하는데 만일 서울에서 간다면 교통비만 해도 수월치 않다. 하지만 일단 왔으면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대단한 전시품들이다. 삼엽충 화석도 있고 공룡알 화석도 있다. 수많은 조개류, 산호류는 너무나 신기했다. 나비의 아름다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다가 천산갑 박제품을 보고 너무나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시품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마냥 머무를수 없어서 나왔다. 전시관을 나오면 온실이 있다. 온실이라고 해서 각종 화초들을 기르는 곳인줄 알았는데 들어가 보니 작은 동물원, 아니 넓은 새장이었다. 금계, 칠면조, 공작, 꿩, 오리 등을 기르고 있었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칠면조나 공작은 호강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못한것 같아 민망스러웠다. 하기야 ‘시골 쥐와 서울 쥐’라는 우화도 있지 않은가?


은암자연사박물관은 2001년에 문을 열었다. 원래 이종옥 선생은 뜻한바 있어서 마포의 5층 빌딩에서 수집품들을 전시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IMF 시절에 잘못되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지인들이 강화도에 좋은 건물을 마련해 주겠으니 어서 오라고 해서 그 많은 짐들을 싸들고 강화도로 건너왔다고 한다. 마련되어 있는 건물은 폐교된 양당초등학교였다. 다행히 운동장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2층 건물의 교실들을 터서 전시실을 꾸몄다. 당초부터 전시관으로 건축한 건물이 아니고 초등학교 교실이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시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감지덕지해야할 판이었나 보다. 


인근에 고인돌공원이 있다. 대단히 넓다. 공원의 대부분이 그냥 풀밭이다. 몇 개의 고인돌이 전시되어 있고 원시시대의 움막집이 두어채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넓다. 자연사박물관을 고인돌공원 안에 세워달라고 요청을 했고 군청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고 한다. 만일 고인돌공원에 자연사박물관이 들어선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강화의 자랑, 나아가 한국의 자랑이 되어 강화관광의 명소가 될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인돌공원에 대한 얘기는 왔다 갔다만 했을 뿐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한다. 그 넓은 고인돌 공원을 왜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가? (근자에 강화대교를 지나면 바로 있었던 강화역사박물관이 고인돌 공원 안으로 새로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고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은암자연사박물관은 결정적으로 새 건물이 필요하다. 지금의 건물은 창피할 정도이다. 그건 전시장이 아니라 낡은 학교 교실일 뿐이었다. 내가 방문한 날은 3월 중순이었다. 그런데도 전시장 안은 너무 썰렁했다. 덜덜 떨다가 나왔다. 조명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관람하기도 힘들었다. 그보다도 문제는 전시품들이었다. 귀중한 전시품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었다. 부서지고 갈라지고 허물어지고 깨지고! 설명문은 잘 보이지 않고! 한마디로 안타깝고 일견 속상했다. 훌륭하게 대접을 받아야 할 수집품들이 너무나 소홀하게 대접받는 것 같아서 안타깝고 속상했다. 세계적인 수집품들이 장소를 잘못 만나 푸대접을 받는것 같았다. 당국은 뭐하고 있는지? 이런 귀중한 전시품들을 왜 빛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은암자연사박물관의 전화는 032-934-8872이다. 카페도 있다. http://cafe.daum.net/eunammuseum이다. 카페에 가입하면 사진들과 함께 은암자연사박물관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수 있다. 은암자연사박물관을 돕는 범국민운동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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