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기와집 선정전(宣政殿)
인정전 동편에 편전(便殿)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궐은 법전(法殿 또는 正殿), 편전, 내전(中殿)으로 구분한다. 그건 그렇고, 한문으로 便殿이라고 써놓으니까 혹시 변소(便所)가 있는 훌륭한 전각인줄 알고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 편전은 왕의 공식집무실이다. 창덕궁에서는 편전인 선정전이 왕의 공식집무실이었다. 선정전이란 말은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에서 나왔다. 어린 단종을 쫓아내고 임금이 된 세조가 지은 이름이다. 선정전의 기와는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청기와이다. 멀리서도 파란색 지붕의 선정전을 분간할수 있다. 어찌하여 다른 건물들은 아름다운 청기와를 쓰지 않았는가? 청기와를 만들려면 외국에서 염료를 수입해 와야 한다. 저 멀리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인디고 염료를 사다가 썼다. 청기와 염료는 단청 염료와 함께 무척 비쌌다. 금값이었다. 예산절감! 그것이 청기와 지붕을 제한한 이유였다. 오늘날의 공무원들, 귀감으로 삼아야 할 사항이다.
선정전의 청기와 지붕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는 편전인 선정전을 정조와 효의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魂殿)으로 사용했다. 가장 중요한 분들의 신주이므로 가장 중요한 건물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에 순조는 선정전 옆에 있는 희정당(熙政堂)을 편전으로 사용했다. 성종시대에는 선정전에서 왕비주관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성종의 왕비인 공혜왕후는 노인공경의 풍습을 권장하기 위해 선정전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다. 80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매년 9월에 잔치를 베풀었다. 아마 심봉사도 멋도 모르고 이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나 싶다.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는 선정전에서 누에치는 시범을 보였다. 중종 때는 왕비가 선정전에서 내명부의 하례를 받기도 했다. 사관들은 왕비가 감히 편전인 선정전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사초를 통해 비판했다. 사관들의 곧은 성품에 대하여는 이러한 일화가 있다. 태종은 사관들을 싫어했다. 미주알고주알 다썼기 때문이다. 하루는 태종이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약간 창피하게 생각한 태종은 주변 사람들에게 ‘짐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절대로 사관들이 알지 못하게 하라. 그들이 알면 무조건 사초에 쓰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조실록에는 태종이 그렇게 말했다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사관 만세!
화려한 단청과 청기와 지붕의 선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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