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창덕궁과 비원

낙선재의 여인들

정준극 2009. 3. 23. 11:52

낙선재의 여인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인 경빈을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낙선재는 최근까지도 출입금지였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여인들이 은둔하며 실제로 살았기 때문이다. 낙선재에는 순종황제의 이복동생인 영친왕의 비 이방자(李方子)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했다. 또 낙선재의 옆에 붙어 있는 석복헌(錫福軒)에는 순종의 왕비인 순정효황후가, 석복헌에서 더 동쪽으로 있는 수강재(壽康齋)에는 덕혜옹주(德惠翁主)가 기거했었다. 덕혜옹주는 1989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함께 낙선재에서 지내던 이방자여사는 1989년 4월 30일에 세상을 떠났다. 여기서 잠시 고종과 순종의 가족에 대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코자 한다.

 

명성황후 초상화

 

고종은 1852년에 태어나 향년 67세로 삼일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종은 1863년, 11세 때에 왕이 되어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할 때까지 무려 43년을 왕으로 있었다. 잘 아는 대로 고종은 민씨(민자영: 민비)와 결혼하였다. 민비(1851-1895)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자 명성황후로 불리었다. 민비는 고종보다 한 살 위였다. 결혼 당시에는 민비가 16세, 고종이 15세였다. 그후 두 사람은 4남 1녀를 두었다. 그러나 장남인 원자를 비롯하여 장녀, 3남, 4남이 모두 어릴 때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둘째 아들만 남았는데 그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이다. 순종은 1874년에 태어나 1907년, 33세 때에 아버지 고종의 양위로 황제가 되었다. 순종은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으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16년을 더 살다가 일제 치하인 1926년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순종은 3년간 황제의 위에 있었을 뿐이었다. 순종의 첫 번째 부인은 순명효황후이고 두 번째가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이다. 순종에게는 소생이 없다. 그 순정효황후가 낙선재에서 살았다.

 

순정효황후


다시 고종으로 돌아가서, 명성황후 민씨가 1895년 경복궁 내의 건청궁에서 일본놈들에 의해 시해된 이후 고종은 후사를 생각하여 다섯 명의 여인과 인연을 맺었다. 첫째는 귀비(貴妃) 엄씨로서 아들 하나를 두었으니 그가 영친왕(英親王)이다. 영친왕은 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난지 2년후인 1897년 태어났으며 이름은 이은(李垠)이다. 새로 황제가 된 순종에게 후사가 없으므로 순종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를 영순위 대기자는 영친왕이었다. 그러나 한일 합방 이후 영친왕 이은은 일본의 정략에 따라 일본 귀족의 여식인 나시모토 마사코와 결혼했다. 그가 남편의 성을 따라 이방자(李方子)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다. 그러므로 원래 이씨 성을 가진 여인은 아니었다. 어쨋든 영친왕과 방자 여사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 아들 진(晉)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조선에 왔다가 생후 8개월만에 뜻하지 아니하게 세상을 떠났고 둘째 아들 구(玖)는 미국여인 줄리아 멀록과 결혼하였으나 이혼하고 지내다가 2005년 일본에서 세상을 떠났다. 영친왕 이은은 1970년 세상을 떠났고 이방자 여사는 한국에 와서 1989년까지 낙선재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고종의 다음 여인은 귀인(貴人) 이씨이다. 1남을 두었으니 완친왕(完親王)이다.

다음 여인은 귀인 장씨이다. 역시 1남을 두었으니 그가 의친왕(義親王) 이강이다.

다음 여인은 귀인 정씨로서 1남을 두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여인은 복녕당(福寧堂) 양씨로서 1녀를 두었다. 덕혜옹주이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특별히 총애하였다. 덕혜옹주는 일본인 쇼 다케유키(宗武志)라는 사람과 정략결혼하여 1녀를 두었으니 정혜(正惠: 마사에)라는 이름이다.


창덕궁 안에 있는 낙선재는 순종의 왕비인 순정효황후,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여사,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가 살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정부는 1996년 낙선재를 복원하여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고종황제

 순종황제

 고종황제와 복녕당 양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혜옹주의 어린시절. 여리여릿해서 풀각시라는 별명을 들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쇼 다케유키(宗武志)와 결혼한 덕혜옹주

 

영친왕(왼쪽)과 이방자 여사 부부.

일본에서 방자(마사꼬)여사와 결혼한 영친황 이은. 두 사람은 정략결혼이었지만 그래도 이방자여사가 워낙 조신하여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였다. 이방자여사는 한국에 와서 사회활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까지 받았다.  

 

꿈많던 시절의 이방자. 결혼전의 이름은 나시모토미야 마사코(梨本宮 方子)였다. 1901년 태어나 1989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비록 일본인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 그의 선행을 기려서 수많은 국민들이 애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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