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 - 산예
흥예문(興禮門)을 통해 들어가면 근정문(勤政門)으로 향하기 전에 영제교(永齊橋)를 건너게 된다. 다리 아래로는 금천(禁川)이 흐르도록 되어 있지만 언제 보아도 물은 말라 있다. 제발 맑은 물이 출렁이는 영제교 아래가 되었으면 한이 없겠다. 물이 철철 흐르도록 수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물이 흐르다만 흔적만 있는 이런 곳을 뭐라고 부르던가? 개천도 아니고 냇물도 아니고 운하도 아니고! 그냥 금천(禁川)이다. 이 곳으로부터는 몸과 마음을 깨끗히 하고 임금님이 계시는 정전으로 들어간다는 뜻에서 금천이라고 했다. 금천의 둑 위에 해태처럼 생긴 이상한 동물이 웅크려 있는 조각이 있다. 영제교 양쪽에 두 개씩 모두 네 마리가 있다. 설명에 따르면 서수(瑞獸)라고 한다. 상서로운 짐승이라는 뜻이리라! 상서로운 짐승으로서는 용, 봉황, 천마, 기린, 코끼리 등이 있는데 둑에 걸쳐 있는 서수는 무슨 짐승에 속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폼을 보니 냇물에서 혹시 물고기가 지나가면 재빨리 몸을 날려 한 입에 잡아 먹을것 같다. 마치 나무위에 앉아 있는 표범이 지나가는 어린 사슴을 덮치려는 자세와 같다. 하지만 혀를 날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장난스럽기도 하다. 경복궁 안내원에 의하면 이 서수의 이름은 천록(天祿), 또는 어려운 말로 산예라고 한다는 것이다. 천록은 하늘의 복록을 받는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녹을 받아 먹으므로 인간세상에서 좋은 일좀 하라는 임무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천록과 산예가 완전히 다른 동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2009. 4. 16일자 조선일보 유홍준의 국보순례 '경복궁 천록'에 대한 기고를 참고로 전재한다.
서수. '배고픈데 물고기나 잡아 먹을까' 라고 말했을까?
경복궁의 천록(天鹿)
우리는 경복궁의 상징적인 조각으로 해태(해태)상은 익히 알고 있으면서 천록(天祿 또는 天禄)이라는 조각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근정문 앞 금천을 가로지르는 영제교 양옆 호안석축(護岸石築-강변의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축대)에 있는 네마리의 돌짐승이 바로 천록이다.
이 돌짐승을 혹은 해태, 혹은 산예(산예-사자 모습을 한 전설상의 동물)라고 하지만, 해태는 털이 있어야 하고 산예는 사자 모양이어야 하는데 그런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뿔이 하나인 데다 비늘이 있는 것을 보면 전형적인 천록상이다.
이 돌조각은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조선시대 뛰어난 조각 작품의 하나로 손꼽을 만한 명작이다. 다만 그 중 한 마리는 이상하게도 등에 구멍이 나 있고, 또 한 마리는 일찍부터 자취를 감추어서 2001년 영제교를 복원할 때 새로 조각하여 짝을 맞춰 둔 것이다.
그런데 실학자 유득공(柳得恭-1749-?)이 영조 46년(1770) 3월 3일 스승인 연암 박지원, 선배 학자인 청장관 이덕무와 함께 서울을 나흘간 유람하고 쓴 <춘성유기(春城遊記)>에 이 돌짐승 이야기가 나온다. '경복궁 옛 궁궐에 들어가니 궁 남문 안에는 다리가 있고 다리 동쪽에 천록 두 마리, 서쪽에 한 마리가 있다. 비늘과 갈기가 완연하게 잘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 말하기를 "남별궁 뒤뜰에 등이 뚫린 천록이 있는데 이와 매우 닮았다. 필시 영제교 서쪽에 있던 하나를 옮겨다 놓은 듯한데 이를 증면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했다. 남별궁은 지금 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별궁이었으니 이제 와서 그 돌조각을 다시 찾아낼 길은 없다.
<예문유취(藝文類聚)>등 옛 문헌을 보면 "천록은 아주 선한 짐승이다. 왕의 밝은 은혜가 아래로 두루 미치면 나타난다"고 하는 전설상의 서수이다. 옛 궁궐에는 임금의 은혜가 백성에 미치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천록이 있었다. 나는 백제 무령왕릉의 서수도 천록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다만 같은 천록상이라고 해도 무령왕릉의 천록은 이미 세상에 나타나 당당히 왕릉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지만, 경복궁의 천록은 앞발에 턱을 고이고 업죽 엎드려 있으면서 나타날까 말까 궁리중인 것 같은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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