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덕수궁의 비운

아, 대한문

정준극 2009. 3. 26. 14:13

아! 대한문, 그리고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수문장의 임무교대

 

덕수궁에서 제일 볼만한 곳은 대한문이다. 매일 세차례에 걸쳐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이 벌이지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반에 진행된다. 경복궁에서도 수문장 교대의식이 벌어지지만 덕수궁의 것이 오히려 규모가 크고 절차가 정확한것 같다. 덕수궁의 수문장 교대의식에는 궁안에서 고위관리가 나와 감독하기 때문이다. 수문장 교대에 혹시 무슨 부정이나 있는지 감독하는 모양이다. 

 

덕수궁 수문장과 수문병의 깃발. 정말 저런 갑옷 투구를 입고 봉을 들고 있었을까?


우리말에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어쩌고’하는 것이 있다. 삼엄이라는 말은 궁궐의 수문군 교대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궁성문의 열쇠가 들어있는 약시함을 인계하는 절차를 초엄(初嚴)이라고 한다. 수문장의 신분을 확인하는 패인 순장패 등을 인계하는 절차를 중엄(中嚴)이라고 한다. 이어 수문군들이 서로 교대하는 절차를 삼엄(三嚴)이라고 한다. 이렇듯 세가지 절차를 완벽하게 마쳐야 수문군 교대가 이루어지므로 경계가 삼엄하다느니 무어니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수문군의 근무교대의식


옛날에 나는 중학교 다닐때 대한문 앞을 무던히도 지나갔다. 그래서 대한문의 변천과정을 약간이나마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대한문이 그나마 담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대한문의 앞뒤로 차길이 열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다가 나중에(1968년) 우연히 보니 대한문이 길 한 가운데 마치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도시계획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보니 원래의 자리에서 훨씬 뒤로 물러서서 서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옮기는 것도 여간 쉽지는 않을 터인데 하여튼 언제 그렇게 옮겼는지 대한문이 뒤로 물러나 담장과 연결되어 있었다. 대한문 앞의 광장도 도시계획에 따라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지하철 1호선 공사가 끝남과 동시에 지금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그래도 광장이 너무 비좁다. 수문장교대식이나마 여유 있게 시행하기 위해서는 대문앞 마당이 더 넓어야 한다. 현재의 대한문은 2005년 대대적인 수술을 받았다. 완전 해체한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이런 때도 있었다. 1960년대 말의 대한문. 길 가운데 외롭게 나와 있다.

 

무릇 모든 궁궐에는 사대문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체로 남쪽 문이 정문이다. 왜냐하면 정전(또는 법전)이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경희궁의 흥화문은 모두 남문으로 남향이다. 경운궁(덕수궁)에도 정문으로 남문인 인화문(仁化門)이 있었다. 동문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그러다가 대안문 앞으로 여러 방향의 도로들이 건설되고 경운궁의 동쪽 끝머리(현재의 조선호텔 자리)에 환구단이 설치되면서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와함께 동쪽의 대안문이 실질적인 정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대안문은 대한제국이던 1906년 수리하게 되었다. 그때 대한문(大漢門)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한양이 창대하라는 의미로 대한문이라고 바꾸었다.  

 

어떤 한문을 조금 배운 초등학생이 '문한대'라고 읽었다. 

 

설명이 필요없는 만추의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데이트 코스로서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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