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창경궁의 영욕

도연명의 시정이 감도는 함인정

정준극 2009. 3. 29. 23:14

도연명의 시정이 감도는 함인정

 


정조가 태어났다는 전각인 경춘전과 대장금이 중종을 치료했다는 전각인 환경전의 앞에 함인정(涵仁亭)이라는 정자가 오뚝 서있다. 함인정은 인조 때에 세워진 전각으로 의외로 앞  마당이 넓게 트여있다. 창경궁은 원래 수많은 행각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전각들이 있는 곳에서 비교적 넓은 공터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전란과 화재로, 그리고 일제의 책략으로 수많은 전각들과 행각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빈터로 남아 있게 되었다. 아무튼 현재 창경궁 중심지역에 생각지도 않았던 넓은 공터가 있으면 그 자리에 행각들이 있었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러나 함인정 앞마당은 원래부터 넓은 공터였다고 한다. 창경궁과 창덕궁의 모습을 자세히 그린 동궐도(東闕圖)에 그렇게 되어 있다. 생각건대 함인정을 중심으로 연회를 많이 열었기 때문에 넓은 마당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실제로 기록에 따르면 성종 때에 인수대비가 이곳에서 왕실 여인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인수대비가 주최한 연회이기 때문에 여인들이 구름같이 모였다고 한다. 고관집 여인들은 천하의 인수대비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해서 술도 한잔씩 받아 먹다가 정신이 알딸딸해진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갈 때에는 남의 집 가마를 타는 바람에 엉뚱한 집에 내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가히 여인천하였다.


함인정은 사방이 확 트인 정자이다. 그런데 동궐도에 보면 원래는 삼면이 막혀 있고 남쪽만 터 있었다고 한다. 함인정의 안에는 사방의 문지방에 도연명이 지은 춘하추동에 대한 시귀(詩句)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함인정에 올라서서 시의 뜻을 새기며 사방을 둘러보는 것도 창경궁 방문에 따른 보상이다.  

 

시귀가 유별하여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峰)

추월양명휘(秋月揚明輝)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

 

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