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아, 건청궁

비극의 현장 옥호루

정준극 2009. 3. 31. 13:46

비극의 현장 옥호루


명성황후(민비)가 시해된 장소는 정확히 어딘지 모른다. 건청궁의 옥호루(玉壺樓)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장안당(長安堂)의 어느 방이라는 얘기도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조선에 대한 내정간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당시 민비는 친러정책을 추진하며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다. 일제에게는 그런 민비가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1895년 8월 20일(음) 일본공사관 직원, 일본군, 일본 자객(낭인)들이 건청군에 난입하여 민비를 시해하고 그 시신마저도 건청군 옆의 녹산에서 불태우는 만행을 자행한다. 이것이 이른바 명성황후 시해사건, 즉 을미사변이다. 을미사변후 고종은 늘 신변의 위험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고종은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는 경복궁에서 벗어나서 현재 덕수궁 옆의 미국공사관으로 옮겨 가려다가 실패한다. 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은 변복을 한 채 세자(순종)만을 데리고 신무문을 빠져나가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으로 간다. 이것이 아관파천(俄館播遷 또는 노관파천)이다. 아관파천 이후 조선 왕조는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관파천 이후 고종은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1897년 10월에 황제즉위식을 먼저 가진 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고종은 황제가 되었고 세자는 황태자가 되었으며 민비는 명성황후로 추존되었다. 

 

경복궁 건청궁 안의 옥호루.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다고 한다. 

  

명성황후라고 추정되는 사진                 여주의 명성황후기념관에 봉안되어 있는 명성황후 초상화 

 

현재 복원된 옥호루

한말의 옥호루. 뒤에 보이는 건물이 관문각.

 

한성신보사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일본 낭인들. 이들이 명성황후 시해의 행동대원들이었다. 쥑일 놈들!!

 

명성황후 민자영을 소재로 한 영화 포스터. 영화배우 수애가 명성황후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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