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코믹 오페라

독일의 징슈필과 비엔나 오페레타

정준극 2009. 3. 31. 14:19

[독일의 징슈필] [비엔나 오페레타]

 

징슈필(Singspiel)이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발생했다는 의견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18세기에 비엔나에서 탄생한 징슈필이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비엔나를 대표하는 징슈필의 거장은 모차르트였다. 프랑스 오페라 코미크와 마찬가지로 징슈필은 도중에 대화체의 대사가 자주 나오는 오페라이다. 징슈필의 주제는 주로 코믹한 것이다. 예를 들면 모차르트의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후궁에서의 도주: 1782)이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후궁에서의 도주'는 코믹한 내용이다. 모차르트보다 후에 나온 베토벤의 Fidelio(휘델리오), 베버의 Der Freischütz(마탄의 사수)도 징슈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좀더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후궁에서의 도피'의 한 장면


19세기의 비엔나에서 꽃을 피웠던 오페레타는 원래의 징슈필 스타일에 프랑스 오펜바흐 스타일의 오페라 코미크 모델을 접목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프란츠 폰 주페(Franz von Suppe: 1819-1895)는 훌륭한 비엔나 오페레타를 여러 편 만들어 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주페의 오페라는 서곡들만 자주 연주되고 있다. 예를 들면 Dichter und Bauer(시인과 농부), Leichter Kavallerie(경기병), Schöne Galathee(아름다운 갈라테) 등이다.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 1825-1899)는 비엔나 오페레타의 대명사이다. 그의 Die Fledermaus(박쥐: 1874), Die Zigeunerbaron(집시 남작: 1885)등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비엔나 오페레타이다. 비엔나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오래도록 지휘자 생활을 했던 카를 밀뢰커(Karl Millöcker: 1842-1899)도 19세기 말 비엔나 오페레타에 귀중한 기여를 했다. 그의 대표작인 Der Bettelstudent(거지학생: 1882), Der Arme Jonathan(가난한 요나단: 1890)은 비엔나 오페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는 프란츠 레하르(Franz Lehar: 1870-1948)가 Die lustige Witwe(메리 위도우: 1905)를 썼으며 오스카 슈트라우스(Oscar Straus: 1870-1954)가 Ein Walzertraum(왈츠의 꿈: 1905), Die taphere Soldat(초콜릿 병사: 1908)를 내놓아 비엔나 오페레타의 백은시대를 열었다. 사족: 비엔나 오페레타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은 오펜바흐에 의한 파리 오페레타와 구분하자는 의도에서 라고 한다.

 

칼 밀뢰커의 '거지 학생'의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