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궁 일화/경복궁의 애환

기로연 재현

정준극 2009. 4. 12. 09:03

기로연(耆老宴) 재현

 

기로(耆老)라는 말은 노인네를 말한다. 그러므로 기로연은 노인네들을 위해 베푸는 잔치이다. 그렇다고 노인네들을 위한 아무 잔치나 감히 기로연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통상적으로 기로연이라고 하면 조선 시대에 임금이 7순을 넘긴 중신들을 위해 베푸는 경로잔치를 말한다. 중신들이라고 한 것은 파티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정2품 이상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정2품이면 최소한 오늘날의 장관급들을 말한다. 그런데 무신(군인)들은 대상이 아니었으며 문신들만 대상이었다. 무신 중에서 7순이 넘기까지 군인으로 활동할수 있는 노인네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복궁 수정전 월대와 앞마당에서는 2009년 4월 3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숙종이 베풀었던 기로연(耆老宴)이 재현되고 있어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임금을 호위하는 군사들과 악공들이 입장하며 이어 파티의 초대손님들인 70세 이상된 노대신들이 후배 공무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다. 마지막으로는 임금이 아주 점잖은체 가마(여)를 타고 등장하며 뒤를 이어 왕세가 일행이 따라 들어온다. 기로연이 시작되면 무슨 절차가 그리도 복잡한지 노인들은 잘못하다가는 허기가 져서 쓰러질지도 모를 지경이 되지만 용하게 참고 버티는 것 같다. 아마 대궐의 기로연에 참석하기 전에 집에서 미리 무얼 먹고 온 모양이다. 기로연 잔치의 하일라이트는 춤과 음악이 화려하게 어우러지는 것이다. 잔치라고 해서 무조건 먹고 마시는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복궁의 기로연 재현에서는 아무래도 생음악이 있고 춤이 있으니까 듣고 보기에 무척 좋다. 기로연 재현은 거의 1시간이 걸리는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기로연이 끝나면 주최측에서 관광객들에게 비록 작은 분량이지만 떡을 포장해서 나누어 준다. 옛날 기로연 때에 임금에게 올렸던 각색의 떡을 조금씩 나누어 담았다고 한다. 기로연 재현 행사는 4월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거행되지만 한여름인 7월과 8월에는 더워서 쉬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란 기관이 주관하고 있다.


옛날에는 평균수명이 그다지 높지 않아서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70이 넘는 신하들을 두었다는 것은 나라의 경사이며 국왕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조선시대의 기로연은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되었다. 태조는 이른바 효친(孝親)정책의 일환으로 기로소라는 부서를 설치하고 나이 많은 중신들을 이 부서에 명예발령하였다. 기로소의 역할은 임금의 자문기구였다. 말하자면 원로원이나 같은 것이었다. 임금은 기로소에 발령된 중신들에게 궤장(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고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 기로소에 소속된 원로 중신들을 위해 베푸는 잔치가 기로연이다. 임금으로부터 궤장을 하사 받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어서 후손들이 궤장을 잘 간수하였다. 궤장을 하사 받은 중신들은 그것도 명예스러운 직분이기에 명예퇴직을 하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기로연은 봄에는 삼월삼짇날, 가을에는 중양절(음 9월 9일)에 베풀어져서 군신 간에 동락하였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기로연의 연혁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조에 이어 조선왕조까지 이어졌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왕이 연개소문에게 궤장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궤장을 하사받은 연개소문은 정년퇴직 기한이 지났지만 대막리지로서 계속 근무를 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시대에 정중부가 나이가 연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종으로부터 궤장을 하사받아 계속 권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기로소를 설치하고 기로연을 베풀기 시작했지만 태조 이후로는 오랜 기간 동안 개최되지 못하다가 숙종 때에 와서야 비로소 크게 개최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영조, 고종 때에도 개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신하들은 70이 넘어야 기로소에 들어 갈수 있고 기로연에 초청받을수 있다. 하지만 임금의 경우에는 비록 잘 먹고 잘 살더라도 주로 자녀 생산에 너무 진력한 나머지 70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젊은 왕을 모신 노신하들로서는 겉으로나마 심히 미안하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숙종때 김창집이라는 약삭빠른 신하가 임금의 경우에는 60세 이상이면 기로연을 베풀어 드리는 것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숙종은 59세였다. 김창집이라는 신하를 비롯한 숙사모(숙종을 사랑하는 모임)회원들은 노란 띠를 두르고 숙종만은 예외로 하여 59세에 기로연을 베풀어 드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숙종도 양심이 있는지라 거듭 사양했지만 신하들이 하도 완강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할수 없이 기로소에 들어갔다. 그때 베푼 잔치에 대한 기록이 소상하게 남아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기로연이 재현된 것이다. 사족이지만, 숙종의 기로연은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에서 베풀어졌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은 폐허로 줄곧 남아 있었다.


기로연 재현의 악공들은 국악고등학교 학생들인것 같다. 하지만 연주는 훌륭했다. 무동들은 기성 고전무용 멤버들인 것 같다. 아주 춤을 멋들어지게 춘다. 다른 어느 궁궐보다도 경복궁이 관광객 유치에 열심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기로연을 재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좀더 세련되고 화려하게 재현하여 외국 관광객들을 많이 많이 불러들이고 그들을 감동시켰으면 한이 없겠다. 경복궁에서 기로연 재연은 옛 집현전인 수정전 앞에서 거행하지만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강녕전 앞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기로연을 재현할 때에 옛날 자료에 의거해서 너무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지루하다. 소개책자에는 자세히 적어 놓더라도 재현에는 절차를 적당히 생략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노신들이 사배하는 것은 재배정도로 단축해도 되지 않을까?

 

 [기로연 재현 마당의 이모저모]

기로현 재현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한쪽에서 대기중인 임금이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야. 임금! 자네 말야, 도대체 사례비는 많이 받는것 같은데 하는 일은 별로 없잖아!' '야, 내시! 무슨 소리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옆에 있던 붉은 옷의 가마꾼 - '논다 놀아, 남은 힘들어 죽겠는디!'

기로연 재현 행사는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로 통역. 이 분들의 설명에 따라 참여자들이 일사분란하게 행동. 한시간 내내 서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목이 마른듯 이분들은 자주 물을 마셨다. 물 한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임금의 등장. 앞에는 옥쇄, 그 다음에 긴 칼을 든 두명. 기타 등등. 가마꾼 왈 '난 왜 이런 역할을 맡았을까? 아이구, 이 임금이란 친구, 생각보다 경장히 무겁네'..임금 속으로 '야, 이것들아 무슨 잡생각들을 하는 거야. 잘들 들어'

 왕세자의 입장. 왕세자야 말로 정말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폼은 낼대로 낸다.

 악공들은 양편에 나누어 포진. 한쪽은 현악기 중심. 다른 쪽은 목관악기와 타악기. '얘, 나말야, 화장실 갔다 와야 하는데 못 갔거든..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참아야지! 참는 자가 이기는 자라는 얘기가 있잖아!'

 무동들의 춤. 아주 잘 춘다. 사뿐사뿐. 나비같다.

 북춤. 쿵쿵하는 북소리에 절로 신이 난다. 옷이 화려하다. 홍청흑백의 앙상블.

 박을 들고 춤을 추는 무동들의 등장. 걸어나오는 남자들 '우린 땅 바닥에 박을 놓아두는 역할이지요. 그래도 고개는 숙이고 다녀야지요!'

 기로연 전경. 일산을 들고 있는 사람은 해가 쨍쨍이어도 걱정 없다. 창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햇빛 때문에 따가워서 죽을 지경이다. 그나마 악공들은 앉아 있어서 다행이다.

 이 분들은 임금의 여(가마)를 드는 사람이다. 일단 구석에서 대기. '에이구, 이놈의 대기도 이젠 지겨워. 그나저나 젊은 놈들은 아주 편한 역할만 하고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은 고된 역할만 시킨단 말야, 에이구'

 가마꾼들은 잔치가 끝날 때까지 한쪽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임금의 퇴장만을 기다린다. 여(가마)는 붉은 천으로 덮어 놓았다. 가마꾼들: '뭐, 먹을거 없나?'

 처용무. '우리의 진짜 얼굴 모습은 이게 아니여요.'

 의장대의 퇴장. 깃발 든 사람 왈 '거 참 깃발 되게 무겁네. 바람에 휘날릴 때마다 손에 진땀이 다 나네'

 임금의 퇴장. 임금님 그제야  한마디 - '어 흠'

 수고한 악공들의 퇴장. '얘, 우리 잘했지?' '그럼, 말밥이지. 그래도 일단은 조용히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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