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바벤버그-3공화국

오스트리아의 군주들: 듀크(Duke) 시대

정준극 2009. 5. 14. 05:51

오스트리아 공작들(Dukes of Austria): 듀크 시대

 

Duke(Herzog)는 영국에서 공작이지만 유럽 공국에서는 군주, 또는 공(公)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적합하다. 군주는 왕과 같다. 따라서 공작, 또는 공이라고 해도 왕과 같은 신분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듀크라고 호칭한다. 

 

하인리히 2세 기념상. 비엔나 라트하우스파르크

 

(바벤버그 왕조)

○ 헨리 2세 (Henry II: 야소미어고트) 공작: 1156-1177. 하인리히 2세

○ 레오폴드 5세(Leopold V) 공작: 1177-1194

 

 * 1192년에 스티리아(Styria)지방을 오스트리아 공작국에 편입함.


○ 프레데릭 1세(Frederick I) 공작: 1195-1198

○ 레오폴드 6세(Leopold VI) 공작: 1198-1230

○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 공작: 1230-1246. 분쟁왕이라는 별칭으로 불림.


(공위시대) Interregnum

프레데릭 2세가 세상을 떠나자 후계자 분쟁이 일어나서 오스트리아 공국은 상당기간 동안 군주가 없는 공위(空位)시대를 겪었다. 


- 블라디슬라우스(Vladislaus). 보헤미아의 벤체슬라우스(Wenceslaus) 1세의 아들. 1246-1247년간 통치했다. 그는 1247년 프레데릭 2세의 조카딸인 게르트루트(Gertrud)와 결혼하여 귀족들로부터 차기 군주로 지지를 받았으나 결혼식을 거행한지 얼마후 허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인명은 재천이라!

- 허만 6세(Herman VI). 바덴(Baden) 변경백: 1248-1250의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 공국의 군주라고 주장하였다. 프레데릭 2세의 후계자임을 주장하기 위해 공식적으로는 프레데릭 2세의 조카딸로서 미망인이 된 게르트루트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귀족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여 정식 군주로 인정받지 못했다.

- 프레데릭 1세(Frederick I). 바덴의 변경백. 1250-1268년의 18년간 군주 역할을 했다. 프레데릭 1세는 허만6세와 게르트루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 프레미슬 오토카르(Premysl Ottokar II). 1251-1278년의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의 군주임을 주장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 공국에는 2명의 군주가 있게 되었다. 오토카르는 보헤미아의 벤체슬라우스 1세의 아들로서 나중에 보헤미아의 군주가 되었다.


바덴의 변경백인 프레데릭 1세가 1250년 오스트리아 공국의 군주라고 주장하고 나서자 그 해 보헤미아의 벤체슬라우스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여 자기의 아들인 프레미슬 오토카르를 오스트리아 총독으로 세웠다. 이듬해인 1251년 오스트리아 공국의 귀족들은 오토카르를 오스트리아 군주로 추대하였다. 1252년 오토카르는 프레데릭 2세의 여동생인 마르가레트(Margaret)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 군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오토카르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260년 독일국왕 리하르트(Richard)로부터 오스트리아 공작으로 책봉되었다.


(합스부르크 공작과 오스트리아 대공)

1278년 독일왕 루돌프 1세(Rudolph I: 1218-1291)가 오토카르를 쫓아내고 오스트리아 공국의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루돌프 1세는 1282년 자기의 아들들을 오스트리아와 슈티리아의 군주로 책봉하였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왕조의 길을 굳건히 닦아 놓았다.

 

루돌프 1세. 독일 슈파이어 대성당 소재

 

○ 알버트 1세(Albert I), 오스트리아 공작: 1282-1308. 루돌프 1세 왕의 아들인 루돌프 2세, 알버트 1세의 아들인 루돌프 3세와 함께 독 일국왕(King of Germany)을 겸직했다. 

○ 프레데릭 1세(Frederick I), 오스트리아 공작: 1308-1330. 알버트 1세의 아들 레오폴드 1세와 함께 독일국왕이라고 공동으로 주장하였다.

○ 알버트 2세(Albert II), 오스트리아 공작: 1330-1358. 알버트 1세의 또 다른 아들인 명랑왕 오토(Otto the Merry)와 공동 군주로서 오스 트리아를 통치하였다. 오토는 1330-1339년간만 공동 통치하였다. 1335년 알버트  2세와 오토의 공동통치 시대에 카린티아(Carinthia)와 카르니올라(Carniola)가 공국으로 인정받았다. 한편, 오토가 세상을 떠나자 오토의 아들인 레오폴드 2세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군주로 등극하여 1358-1365년간 오스트리아 군주의 자리에 있었다. 

○ 루돌프 4세(Rudolph IV: 1339-1365), 오스트리아 공작(Archduke: 1358-1365). 알버트 2세의 아들인 루돌프 4세  치하인 1369년 티롤(Tyrol)이을 오스트리아에 속하게 되었다. 루돌프 4세는 합스 부르크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루돌프 4세는 설립왕(The  Founder)이라는 별칭을 받고 있다.

 

루돌프 4세. 오스트리아 대공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통치시기에 비엔나는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로서 발판을 굳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