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명인들/거장 건축가

Hans Hollein(한스 홀라인)

정준극 2009. 5. 19. 04:56

Hans Hollein(한스 홀라인)

하스 하우스, 알베르티나

 

하스하우스에서 한스 홀라인. 배경은 슈테판 성당의 남탑(슈테플)


비엔나의 랜드마크인 성슈테판성당(Stephansdom)의 정면 건너편에 현대적인 유리건물이 있다. 하스-하우스(Haas-Haus)이다. 현재의 하스-하우스가 들어선 자리에는 원래 바로크 스타일의 오래된 건물이 있었다. 너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파손이 되었기 때문에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세우기로 했다. 공모 결과 한스 홀라인의 현대적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지만 비엔나 시민들은 설마 유서 깊은 슈테판광장의 한쪽, 그것도 바로 성슈테판성당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장소에 유리집이 들어서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현대적인 유리 건물인 하스-하우스를 건설코자 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비엔나 시민들은 크게 찬반으로 나뉘어져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절대로 안된다는 측과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측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세는 현대와 고전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결국 1990년 하스-하우스가 완성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오스트리아과학예술훈장(Österreichsches Ehrenzieichen für Wissenschaft und Kunst)을 받았다. 오늘날 하스-하우스는 비엔나의 또 다른 랜드마크로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슈테판성당 건너편의 하스-하우스


한스 홀라인(Hans Hollein)은 1934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1956년 비엔나미술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1959년 일리노이기술대학(IIT)을 수료했고 이어 이듬해에는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교를 수료하여 국제적인 안목을 넓혔다. 그는 고향인 비엔나로 돌아와 정착하기 전에 미국과 스웨덴의 여러 건축회사에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그러다가 1964년 비엔나로 돌아와 개인 건축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1963-64년과 66년에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 건축한 초빙교수로 활동했고 1967-76년에는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의 교수를 역임했다. 그후 1976년부터는 슈투벤링에 있는 비엔나응용예술대학교(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unst)의 건축공학 교수로서 활동했다. 홀라인은 주로 건축분야에서 일했지만 디자이너로서 세계적인 멤피스(Memphis)그룹과 알레씨(Alessi)를 위해 디자인업무를 맡아 하기도 했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1980년 비엔나 부르크테아터에서 공연된 아서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의 드라마 ‘고독한 길’(Der einsame Weg)의 무대장치 등을 디자인했다. 그는 건축분야에서 여러 상을 받았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1985년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프리츠커(Pritzker)상을 받은 것이다.


한스 홀라인의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비엔나 슐린(Schullin) 보석상 건물, 묀헨글라드바흐의 아브타이버그(Abteiberg) 박물관, 베를린의 라우흐슈트라쎄(Rauchstrasse), 프랑크푸르트의 현대미술관(Museum für Moderne Kunst), 비엔나의 하스-하우스(Haas-Haus), 산크트 푈텐(St Pölten)의 남부오스트리아박물관, 베를린의 오스트리아대사관, 발두즈(Valduz)의 중앙은행, 비엔나의 알베르티나(Albertina) 미술관, 비엔나의 힐튼 호텔, 비엔나 도나우카날(Donaukanal) 지역의 사무실건물들, 테헤란의 유리-도자기의 집(Glass and Ceramics House), 뉴욕의 페인(Feigen)미술관 등이다. 최근에 비엔나에서 설계한 작품은 도나우슈타트에 있는 고등학교(Volksschule)이다.

 

알베르티나 미술관의 테라스에 설치된 한스 홀라인의 구조물. 널뛰기 처럼 생긴 구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