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Carl Czerny(칼 체르니)

정준극 2009. 5. 28. 22:03

Carl Czerny(칼 체르니)

피아노 교본의 마스터

 

칼 체르니

 

체르니라고 하면 우선 ‘체르니 피아노교본’을 만든 사람이 연상된다. 그러나 실상 그는 연습곡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편의 훌륭한 피아노협주곡을 남겼다. 비엔나 출신의 체르니는 당대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겸 뛰어난 피아노교사였다. 체르니는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해에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체르니가 태어난 집은 2구 레오폴드슈타트의 봐그가쎄(Waggasse)에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두 재건축되어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체르니는 보헤미아가 오리진인 가정에서였다. 보헤미아의 님부르크(Nymburg)가 아버지의 고향이다. 때문인지 체르니는 10살 될때까지 독일어를 말할 줄 몰랐다. 대신 체코어를 사용했다. 그는 우선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훗날 요한 네포무크 훔멜(Johann Nepomuk Hummel), 안토니오 살리에리, 루드비히 반 베토벤에게서 정식으로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체르니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의 신동으로 알려졌다. 아홉 살 때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가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뜻 깊은 일은 1812년, 그가 20세의 젊은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5번인 일명 ‘황제’(Emperor)를 비엔나에서 초연한 것이다. 1812년이라고 하면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점령했다가 견디지 못하고 퇴각한 해이다.

              


   

체르니의 피아노 스승들인 요한 네포무크 훔멜, 안토니오 살리에리, 루드비히 반 베토벤

             

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렸던 체르니는 15세 때에 이미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그가 가르친 여러 제자 중에는 프란츠 리스트도 포함되어 있다. 나중에 리스트는 자기가 작곡한 13곡의 연습곡(Etude)을 체르니에게 헌정하였다. 리스트는 연습곡(에뛰드)라는 단어를 정식 작품에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리스트는 체르니와 함께 ‘벨리니 주제에 의한 5개의 변주곡’을 완성하기도 했다. 체르니는 피아노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유명했다. 그는 생전에 모두 861곡의 작품을 작곡했다. 그는 피아노 교본 이외에 미사곡, 진혼곡, 교향곡,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현악4중주곡을 남겼다. 그의 피아노교본 중에서 ‘The School of Velocity’와 ‘The Art of Finger Dexterity'는 아직도 피아노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참고서로 사용되고 있다. 체르니는 향년 66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체르니의 가르침을 받아 나중에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된 인물들은 허다하다.

 

     

 테오도르 헬러                                   지기스몬트 탈버그                              테오도르 레세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