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Gustav Mahler(구스타브 말러) - 5

정준극 2009. 5. 29. 22:32

Gustav Mahler(구스타브 말러) - 5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볼수 있는 말러 낙서

 

말러는 대단히 어려운 음악을 작곡한 인물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의 음악은 1960년대부터 재평가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일반 대중문화에도 말러의 음악이 자주 인용될 정도로 친숙한 음악이 되었다. 말러의 음악이 대중예술에 인용되어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베니스의 죽음’(Death in Venice)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1971년 제작된 이 영화의 주인공인 구스타브 폰 아센바흐(Gustav von Aschenbach)는 말러 자신을 그린 것이라는 얘기다. 주인공인 아센바흐는 말러와 마찬가지로 지휘자이면서 작곡가인데 그의 작품은 환영을 받지 못하였다. 이 영화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3번과 5번의 발췌곡이 나온다. 교향곡 5번에서의 아다지에토(Adagietto)는 이 영화로 더욱 유명해졌다. 연주회에서 아다지에토만 별도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특히 1968년 로버트 케네디의 장례식 때에 사용되어 감동을 주었다.

 

오페라 '베니스의 죽음'의 한 장면. 말러를 오페라의 주인공 아센바흐로 묘사했다는 견해가 있다.

                    

1984년 감독 켄 러셀(Ken Russel)은 ‘말러’라는 타이틀의 자서전적 영화를 제작하였다. 로버트 파웰(Robert Powell)이 말러 역할을 맡았다. 말러의 일생을 간추려서 보여준 영화였다. 영국의 극작가 로날드 하우드(Ronald Horwood)는 2001년에 ‘말러의 개종’(Mahler's Conversion)이라는 희곡을 썼다. 말러가 유태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나서 겪는 심적 갈등을 그렸다. 말러의 음악은 영화나 연극에서 자주 사용되었는데 주로 주인공의 심적 상태가 동요를 일으키거나 보헤미안 기질을 내보이는 경우에 사용되었다. Educating Rita(리타 교육하기)라는 영화에서 리타(줄리 월터스)의 새로운 룸메이트인 트리슈(모린 립만)가 말러의 교향곡 6번의 마지막 악장을 크게 틀어놓고 독백하듯 ‘말러 없이 죽을수 없는가?’라고 말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말러의 역할을 맡았던 영국의 배우인 로바트 파월(Robert Powell)

              

말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줄이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교향곡 아홉편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코자 한다. 말러의 교향곡에는 대체로 별명이 붙어 있으나 실상 말러는 그런 별명을 싫어하였다. 말러의 오리지널 스코어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다.

 

- 교향곡 1번 2악장은 스타 트렉(Star Trek)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우주여행 에피소드 카운터포인트’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부제가 말해주듯 말러는 2악장에서 대위법(카운터포인트)를 사용하였다. 1번은 ‘교향시’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거인’(Titan)이라고 불렀다. ‘거인’이라는 부제는 친구 장 폴(Jean Paul)이 말러에게 제안한 것인데 말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 교향곡 2번은 ‘부활’(Resurrection)이라는 타이틀로 알려져 있다. 오리지널 악보에는 그런 제목이 붙어 있지 않다. 나중에 사람들이 붙인 제목이다.

- 교향곡 5번은 C 샵 단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말러는 출판사에게 연락하여 ‘전체 교향곡의 키(음조)를 하나로 한정하여 말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그러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키 표시를 모두 제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본 TV 시리즈인 ‘데키나이 오도코’의 주인공으로 고전음악 및 오페라광인 신슈케 쿠와노는 자기의 아파트에서 교향곡 5번의 피날레를 자주 연주한다.

- 교향곡 6번은 Tragic(비참)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으나 오리지널 악보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 교향곡 7번에는 ‘밤의 노래’(Song of the Night)라는 타이틀이 있으나 역시 말러의 오리지널 악보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 교향곡 8번은 ‘천의 교향곡’(Sumphony of a Thousand)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나 역시 말러의 오리지널 악보에는 그런 표현이 없다. 실제로 말러는 8번에 ‘천의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말러가 라이프치히에 있을 때 살던 집. 이 집에서 교향곡 1번을 완성했다.

 

-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이다. 말러는 상당 부분의 멜로디를 작곡해 놓았으나 초안일 뿐이며 더구나 오케스트레이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말러가 세상을 떠난후 여러 작곡가들이 교향곡 10번을 완성코자 노력했다. 에른스트 크레네크(Ernst Krenek)는 대표적이다. 그는 동료인 프란츠 샬크(Franz Schalk), 알반 베르크(Alban Berg), 알렉산더 쳄린스키(Alexander Zemlinsky)의 도음을 받아 1악장의 아다지오와 3악장의 푸르가토리오(Purgatorio)를 완성했다. 이밖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 10번을 완성하기는 했다. 그러나 말러 해석의 뛰어난 지휘자들인 브루노 발터, 레오나드 번슈타인, 버나드 하이팅크, 게오르그 솔티 경 등은 다른 사람들이 완성해 놓은 교향곡 10번의 지휘를 거절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말러에 비하여 카운터포인트 기법의 부족하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나중에 데릭 쿠크(Deryke Cooke)라는 작곡가가 알마 말러의 적극적인 양해를 얻어 교향곡 10번을 완성했다. 다른 지휘자들은 이 곡을 지휘하였지만 번슈타인은 그마저도 거절하였다.

- 연작가곡이라고 할수 있는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에는 ‘한명의 테너, 한명의 알토(또는 바리톤) 음성,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스 베트게(Hans Bethge)의 ‘중국의 플루트’(The Chinese Flute)라는 시에 붙인 곡이다.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으로 분류할수도 있고 연작가곡으로 분류할수도 있다. 말러는 ‘대지의 노래’에 대한 넘버링을 기피하였는데 이유는 9라는 숫자가 저주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대지의 노래' 악보 표지. 동양적인 모티브가 담겨 있다.

 

말러는 9에 대한 미신을 믿었다고 한다. 말러는 베토벤과 브루크너가 교향곡을 9번까지 작곡하고 세상을 떠난 것을 우연이 아니라고 믿었다. 9라는 숫자의 저주를 받아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러 자신도 9번 교향곡을 쓰기를 대단히 꺼려했다.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 8번 이후에 작곡한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을 교향곡으로 보면 당연히 교향곡 9번이 되어야 하는데 말러는 넘버를 붙이지 않았다. 대신 ‘한명의 테너...’(Eine Symphonie fur eine Tenor -und eine Alt -(oder Bariton) Stimme und Orchester)라는 부제를 붙였을 뿐이었다. 말러는 교향곡 9번을 완성하고난후 곧 10번을 작곡하여 9의 저주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10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체코공화국의 이블라흐(이글라우)에서 열린 2010년도 말러 탄생 150주년 기념 음악제의 한 장면

 

세계 각국에는 말러를 추모하는 단체들이 많이 설립되어 있다. 비엔나에 있는 국제 구스타브 말러 협회(Internationale Gustav Mahler Gesellschaft)는 그중에서 가장 중심되는 단체이다. 1955년에 설립되었다. 이 협회는 1958년부터 말러작품의 유공자에게 황금 말러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레오나드 번슈타인과 같은 지휘자, 빈 필하모닉과 같은 단체 들이 황금 메달을 받았다. 이 협회는 또한 말러의 발자취를 찾아서 기념 명판을 설치하는 사업도 꾸준히 수행하였다. 결과, 말러가 잠시 살았던 도비아코, 슈타인바흐, 비엔나의 아우엔브루거가쎄 2번지, 말러가 세상을 떠난 비엔나의 뢰브요양소(Lŏw sanatorium: 9구 마리안넨가쎄 20번지) 건물 등에 기념 명판을 설치하였다.

 

말러가 세상을 떠난 곳인 비엔나 제9구 알저그룬트 마리안넨가쎄 20번지의 뢰브요양소. 지금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국제구스타브말러협회는 이곳에 아래와 같은 기념 명판을 설치하였다.

 

구스타브 말러가 이 집에서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