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강화-인천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정준극 2009. 6. 4. 23:19

인천상륙작전기념관

(Memorial Hall for Incheon Landing Operation)

 

자유수호의 탑

 

대한민국의 6월은 자유수호를 다짐하는 달이다. 대한민국의 6월은 6.25사변의 참화를 상기하는 달이며 대한민국이 공산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귀중한 목숨을 희생한 전몰장병들을 추모하는 달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남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자유수호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처름 숭고한 일은 없다. 그런데 만일 어떤 청렴을 주장하던 사람이 자기자신과 가족들의 청렴하지 않은 사실이 계속 들어나자 창피하게 생각하여 자살했다고 하자. 그런 죽음과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릇 사회의 지도급 인사로서 국가를 위한다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떠날 때에도 고귀하게 떠나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라! 자기의 장기를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기증하시지 않았는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자살을 감행한다면 용기야 있다고 하겠지만 그건 고귀한 죽음이 될수 없다. 고귀하지 않게 귀중한 생명을 마감한 사람에게는 존경을 보낼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인간의 도리이다. 각설하고, 여기, 조국을 적의 침략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친 용기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이 있다. 삼각지의 전쟁기념관이 중심이겠지만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도 숭고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무릇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하면 북한 공산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귀중한 목숨을 희생한 영웅들에 대하여 무한한 존경심과 추모심을 가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입구의 웅장한 모습. 16개 유엔군 참전국의 국기들이 휘날리고 있다.

 

현충의 달 6월을 마지하여,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로 잊을수 없는 6.25사변의 달 6월을 마지하여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특히 지금은 모두 노쇠하지만 기상만은 아직도 의연한 참전용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인천 송도에 있다. 연수구 옥련동이 소재지이다. 청량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우러러보게 되는 기념관이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있은지 44년만인 1984년 9월 15일에 개관되었다.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시행된 날이다. 대단한 규모의 기념관이다.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과 작전에 참여했던 국군 및 유엔군들이 보면 틀림없이 깊은 감회와 함께 한국이 자기들의 활동을 감사히 여겨 기념관을 지은데 대하여 고마워 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작전명은 크로마이트(Chromite)작전이었다. 크로마이트는 크롬이라는 철광석을 말한다. 왜 하필이면 크롬인가? 원래 작전명은 왜 하필이면 이런 이름인가라고 생각되는 것이면 잘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자유수호의 탑. 인천에 첫 상륙한 유엔군의 모습. 이들의 귀중한 희생이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의 전시물에 대한 설명은 사족처럼 생각되어 생략코자 한다. 그래도 전시에 대하여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으면 미안한 일이므로 간단히 소개하자면, 전시관에는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서부터 휴전까지의 과정이 설명되어 있고 그때 전쟁에서 사용한 각종 무기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6.25의 전황판, 인천상륙작전의 디오라마, 전함과 상륙주정(LSD)의 모형 등이 각종 첨단 전시기법으로 전시되어 있다. 너무 간단한 소개여서 미안하므로 기념관의 초입에 새겨있는 취지문에 대하여 역사와 진실을 새롭게 하는 의미에서 소개코자 한다. 가로되. 

 

<피에 주린 북괴의 공산남침으로 삼천리 금수감산이 욕된 발길에 더럽혀지던 날 우리의 용감한 국군과 자유를 사랑하는 유엔군이 뭉쳐서 일어나 9.15상륙작전의 승전고를 울린 곳 여기가 인천! 민족의 소생을 가름한 결전의 터전이며 멸공의 의지를 신념화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 날의 뜨거운 정신이 횃불처럼 밝혀진 언덕에 정의와 자유를 지킨 용사들의 얼을 기려 이 위대한 구국의 사실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중략) 기념관을 짓고 이 비를 세우니 갈라진 나라 한 덩어리 될 때까지 밝게 타오르는 성화의 뜻 겨레의 가슴에 새겨저 저 바다와 더불어 영원하리라>이다.  

 

비문을 쓰고 비석에 새겨넣을 당시만 해도 우리는 북한을 북괴라고 불렀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뻔질나게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동상 앞에가서 헌화하고 경배하지를 않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그들이 차려준 파티에 나가서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지를 않나, 햇볕이라는 미명아래 국민의 혈세를 퍼주지를 않나...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북한이 좋으면 북한에 가서 살면 될것 아니겠는가? 아직도 모북, 친북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이 사회에서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하다. 그런 사람을 모두 북송하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평소 자기들의 지지자들이 와서 살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도무지 없을 것이다. 근자에 친북주의자들을 북한으로 보내어 살게 하자는 국민적 운동이 일고 있음은 만시지탄이 있지만 반드시 이루어져야할 운동이다.

 

야외전시장의 고사포와 호크유도탄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는 자유수호의 탑이 웅장하게 서 있다.  탑의 아래에 시인 한상억 씨의 글이 새겨저 있다. 내용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건설 취지문과 대동소이하지만 그래도 6.25사변을 되새겨 보는 의미에서 소개코자 한다.

 

동족상잔의 미친 물결이

문득 북에서 밀려와

욕된 침략에 짓밟히던 날

온 세계의 바른 뜻 일어나 단결하여

전사에 기리 빛날

상륙전의 개가를 올린 곳

여기 인천

온 겨레 살 길과

자유를 되찾은 싸움의 옛 터전이며

그로써 나라를 버틴 역사의 현장이다

그 매운 정신 횃불처럼

민족의 가슴을 밝히는 언덕에

용사들의 뜻을 기리는

시민의 정성을 모아 기념관을 세우니

하루 빨리 이 강산 한 덩어리 되도록

저 산과 바다에

우리 모두 맹세하며 나가는 바탕되리라

 

그런데 실상 이들 문장보다도 전시관 입구에 적혀 있는 시인 모윤숙 여사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제목의 시가 더욱 가슴을 적신다.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는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일러다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 대한민국에 자유를 찾아준 맥아더 장군 흉상. 맥아서(매카서) 장군은 대한민국의 은인이다.

 

6.25사변의 인명피해는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고 끝을 맺고자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아침 이슬처럼 사라졌다. 누구때문인가? 전범은 누구인가?

한국군 전사 137,899명, 부상 450,742명, 실종 32,838명 도합 621,479명

유엔군 전사 40,670명, 부상 104,280명, 실종 9,321명 도합 154,881명

(유엔군중 미군 사망자 36,940명, 부상 92,134명, 실종 3,737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영국군으로 사망 1,078명, 부상 2,674명, 실종 179명이다.)

 

 자유수호의 탑 왼편에 있는 맥아더 장군의 상륙작전 지휘 장면 부조

 맥아더 장군이 즐겨 사용하던 파이프. 옥수수자루로 만든 것이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찾아가는 길: 지하철을 타고 동인천에서 내려 송도가는 시내버스를 탄후 송도유원지 로타리에서 내려 무조건 산쪽을 향해 큰 길로 걸어가면 보인다. 지하철 인천 1호선을 타면 동막역에서 내린후 6-1, 8, 16번 등 시내버스를 타고 송도유원지에서 내려 산쪽을 향해 길 양 옆의 모텔들 숲을 지나 올라가면 된다. 로터리에서 바다쪽이 아닌 산쪽으로 큰길을 보면 산중턱에 장엄한 전시장이 보인다. 인천지하철 1호선은 부평역에서 환승이다. 관람시간은 매일(월요일 제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월요일이 우연히 공휴일이면 휴관하지 않는다. 전국민 필견의 장소. 특히, 모북 및 종북 및 친북주의자들!

 

 전시장. 16개 유엔군 참전국과 5개 의료지원국에 대한 설명.  

전시장. 유엔군의 활동모습. 

 전시장. 왼편에 있는 돌은 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처음 상륙한 부대가 기념으로 수집한 월미도의 돌.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와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갔다가 통일을 남겨둔채 후퇴해야 했다. 꽹과리 치는 중공군. 인해전술로 덤벼 들었다. 중공군들은 물밀듯 몰여오면서 싸-싸(殺: 죽여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우리의 국군과 유엔군들을 죽이라는 소리였다.

 야외전시장의 F-86전투기. 전쟁 중에 하늘을 가로 지르는 이 전투기를 보면 웬 일인지 든든했다.

자유수호의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자유수호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예전에 학교 다닐 때에 6.25사변 기념일이면 운동장에 모여 기념식을 거행하고 6.25의 노래를 불렀다. 정부에서도 시민회관 같은 넓은 곳에서 기념식을 가지고 6.25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기념식이 끝나고 나면 군인들과 학생들이 플라카드를 앞에 들고 시가행진을 했다. 교복 가슴에는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과 같은 표어를 적은 리본을 매달았다. 초등학교건 중학교건 음악시간에는 6.25의 노래, 3.1절 노래, 광복절 노래, 개천절 노래 등을 의무적으로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중에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버린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쫒기는 적의 무리 쫒고 또 쫒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라는 6.25의 노래의 1절 가사만이라도 제대로 아는 학생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 좌파친북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우리 학생들의 애국적인 반공의식을 흐릴대로 흐려놓은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는 햇볕이라는 미명아래 국민들의 혈세를 몰래 가져다 준데 대하여 도대체 이들이 어느나라 국민인지 모르겠다는 말들을 했다. 아무튼 김대중, 노무현이가 햇볕정책이라는 미명아래 돈을 퍼주었기 때문에 선군(先軍)정치를 하게 되었고 핵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하수인들은 대한민국에 살 자격이 없다. 북한에 가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안가고 있다. 요즘의 어떤 청년은 이 노래가사를 두고 '북한이 무얼 얼마나 잘못했다고 어찌 그리 잔인한 가사를 썼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왜 그런 가사를 붙이지 않으면 안되었는지에 대한 답변은 다음 사진 몇장으로 대신한다.

 

1952년 10월 흥남에서 공산당이 양민을 무차별 살해하고 동굴에 시신들을 집어던진 것을 마을 사람들이 발굴하여 정리하고 있다.

남편 또는 아들의 시신을 찾아 다니며 울부짖는 아내(또는 어머니)의 모습. 공산군들은 후퇴하면서 대한민국의 청장년들을 북으로 끌고가기가 힘들자 길거리에서 그대로 살해하였다. 이들의 손은 철사줄로 꽁꽁 묵여 있었다. 이것이 북한 공산당들이 저지른 만행이다. 이런 만행을 보고도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나라 백성들인가? 마침 기념관을 찾아왔던 어떤 노병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노벨평화상 좋아하네! 미친놈들!'이라고. 

누구 때문에 추운 겨울에 집을 버리고 가족과 헤어져 피난길을 떠나야 했는가? 누구 때문에? 그 장본인에게 찾아가서 절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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