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추억 따라/강화-인천

제물포구락부

정준극 2009. 5. 18. 18:21

구제물포구락부


인천 자유공원 한쪽에 근대문화 교류의 현장이던 제물포구락부 건물이 있다. 주소로 치자면 중구 송학동에 있다. 여름이면 새소리 들리는 푸른 숲속에 쌓여 있고 멀리는 제물포 포구가 내려다보여 미상불 운치가 있는 곳이다. 20세기 초반 개화기에 제물포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다.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는 한국문화원연합회 인천시지회라는 단체가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새로 단장하여 운영하고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그런 곳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근처에도 가본일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박물관 스타일로 꾸며져 있어서 아무나 관람할수 있다. 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아직 미약한 형편이지만 아무튼 한세기 전으로 돌아가는 가상적 역사 체험을 할수 있게 만들어 놓아서 교육적 가치가 충만한 시설이 되었다. 응접실 벽에 걸려 있는 여러 대의 모니터를 통해서는 개항기의 에피소드들을 드라마로 재현한 영화를 볼수 있으며 당시에 촬영해 놓았던 영상자료들을 바탕으로 다큐멘타리를 만들어 놓은 것도 볼수 있어서 마치 그 시대에 돌아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유물 전시에 중점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제물포구락부박물관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개화기 당시의 에피소드 등을 직접 보고 들을수 있어서 시간 가는줄 모르게 흥미롭다. 게다가 각국의 귀중한 공예품들도 잘 정리되어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있다. 특별 이벤트로 음악회도 개최한다. 2008년말의 송년음악회에는 1백명 이상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1백명이 어떻게 들어 앉았을까? 궁금하다.

 

구제물포구락부 입구

 

제물포의 각국 조계는 1884년 10월에 공식적으로 설치되었다. 이로써 각국 사람들이 법적 특권을 가지고 제물포에 거류할수 있게 되었다. 각국 조계에 살고 있던 외국인들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문제가 있으면 조정하는 방편으로 1889년 3월 자치의회에 해당하는 신동공사(紳董公司: Municipal Council)라는 기구를 출범시켰다. 2년후인 1891년, 신동공사 회원국들은 축하할 일이 있으면 술한잔이라도 같이 나누고  춤추고 싶으면 무도회를 개최하기 위해 제물포클럽을 조직하고 지금의 관동에 있는 1층 양옥을 클럽 건물로 사용했으나 워낙 장소가 협소하여 새로운 회관의 건설이 절실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1900년, 제물포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은 기금을 마련하여 사교클럽 건물을 신축키로 했다. 러시아의 건축가인 사바틴이 건축책임을 맡았다. 사바틴은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을 설계했으며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경복궁 건청궁에 최초의 양식 건물인 관문각을 걸설했고 덕수궁의 정관정 등을 설계한 인물이다. 제물포클럽은 1901년 6월 22일 완성되었다. 각국 외교사절, 선교사, 상인 등 회원들이 모여 신축 파티를 열었다.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현관문을 열어 클럽을 오픈하였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그후 제물포클럽은 파란만장의 길을 걸었다.

 

구제물포구락부의 아담한 모습


처음에는 순수하게 제물포에 거주하고 있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그리고 소수이긴 하지만 중국과 일본 사람들의 친목 겸 사교클럽으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1913년 일본에 의해 제물포의 외국인 거주지역인 각국조계가 철폐되자 제물포클럽은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일본의 전유물이 되었다. 곧이어 일본재향군인회가 정방각(精芳閣)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1934년부터는 일본부인회가 사용하였고 광복 후에는 미군 장교클럽으로, 6.25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 7월부터는 인천시의회, 인천교육청, 인천시립박물관이 그 좁은 집을 함께 사용하다가 1953년 2월에 교육청과 시의회가 각각 살 곳을 마련하여 이전하자  비록 협소하지만 1990년까지 인천시립박물관으로만 사용하였다. 1990년 인천시립박물관이 남구 동춘동으로 이전한 후에는 한동안 중구문화원이 사용하였고 2007년 인천시 유형문화제로 등록되고부터는 인천시문화원연합회가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 리모델링하여 제물포구락부로 재탄생하였다. 제물포구락부라는 명칭에서 구락부(俱樂部)라는 말은 클럽(Club)을 일본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원래의 명칭은 제물포클럽이었지만 조계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는 일본식으로 제물포구락부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것이 굳어져서 오늘까지 이어온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성을 고려하여 그냥 제물포구락부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구락부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용되던 때도 있었다. 오케이 구락부, 당구 구락부, 만화장 구락부 등등...오늘날에는 제물포구락부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구락부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아늑한 실내의 응접실

마침 2009년 5월은 '독일의 달'로 정하고 독일로부터 온 각종 공예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영상 스토리텔링은 제물포구락부에서 지냈던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를 드라마 형식으로 재현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모두 다섯편이 마련되어 있다. 제물포구락부의 신축 파티 장면을 영국대사관의 협조로 재현한 드라마, 하와이 이민의 출발지인 제물포에 얽힌 한많은 사랑의 이야기(개화기의 소설 ‘송뢰금’을 재구성한 드라마), 제물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외국 상인들의 이야기(특히 독일계 무역 상사인 세창양행이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조선에서 정착해 가는 과정을 재현한 드라마), 제물포클럽의 회원이던 중국인 우리탕씨의 스페인 부인이 보여주었던 플라멩코 춤을 재현한 영화, 을사늑약 이후 조선을 떠나지 않을수 없었던 미국 공사 알렌의 이야기를 재현한 드라마가 상영되고 있다. 언제 저런 영상물들을 다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영상 시설. 네개의 대형 스크린에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이 상영되고 있다.

 

시대상황 다큐멘터리도 5편이 마련되어 있다. 하와이 이민, 경인선 개통, 제물포 해전, 을사늑약, 명성황후에 대한 것이다. 이밖에도 제물포구락부의 복원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각국조계에 살던 제물포구락부 회원들의 면모와 그들이 활동하던 건축물을 살펴보는 다큐멘터리, 회원국의 페스티벌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도 준비되어 있다. 제물포구락부는 매일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은 무료이며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인네와 어린아이들은 입장을 권유하지 않을 것 같다. 건물이 협소하여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방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고 10명 정도가 바람직하다. 그러나 10명만 되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시된 물건들을 자꾸 만져보거나 조용해야할 곳에서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떠드는 성향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점잖은 사람 5명 남짓이 역사탐방의 사명을 가지고 미리 연락하고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화는 032-765-0261이다.

 

구제물포구락부의 실내


사족: 건물 입구의 왼쪽 벽에 붙어 있는 안내판의 표기와 건물 안에서 안내원이 나누어 주는 팸플릿의 표기가 다른 것들이 있어서 혼란을 준다. 예를 들어 제물포라는 영문 표기에 있어서 안내판에는 Jemulpo라고 되어 있으나 팸플릿에는 Chemulpo라고 적혀 있다. 팸플릿의 설명에 따르면 제물포는 Jemulpo가 맞지만 개항 당시의 공식 표기가 Chemulpo이어서 제물포구락부의 영문 표기도 Chemulpo Club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팸플릿에 의하면 제물포클럽은 조계 제도가 폐지된 후 그 기능을 상실해 1913년 이후 일본재향군인연합회가 정방각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건물 앞의 안내판에는 1914년 외국인 거주지역인 각국조계가 철폐되고 일본재향 군인회관...이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떤 것이 맞는가? 생각건대 팸플릿이 맞는것 같다. 그렇다면 건물 앞에 있는 국영문의 안내판은 내용을 고쳐야 할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터 제물포구락부라는 명칭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다. 팸플릿에는 1914년 이후 정방각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제물포구락부라고 표기하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인가 그 이후인가? 안내판에 굳이 소재지(The Location)이라고 쓸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주소를 적어 놓으면 소재지인줄 모를까?

 

 건물 앞에 있는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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